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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카뮈는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나

by 오르 Ohr

카뮈의 인식론의 출발점: 부조리


“인간과 그의 삶 사이의 이혼, 배우와 무대 사이의 단절, 이것이야말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의 1장 부조리한 추론, 2절 부조리의 벽을 읽으면서 카뮈의 인식론적 입장, 즉 카뮈의 세계 인식 방식, 인간 이해 방식에 대하여 정리하고 싶었다. 그의 인식론은 경험주의와 이성 중심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되, 그 한계를 철저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는 인간 존재의 출발점을 초월적 신념이나 형이상학이 아닌, ‘살아 있음의 감각’과 ‘설명되지 않는 부조리한 경험’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세계가 말이 없다는 것, 인간은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그 요구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카뮈의 철학은 출발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인식론은 철저히 경험적이다. 감각되고 의식된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는 현상학적이며, 이성이 닿을 수 있는 한계까지 가서 그 너머로는 넘어가지 않으려는 겸허함이 있다.



“This heart within me I can feel, and I judge that it exists. This world I can touch, and I likewise judge that it exists. There ends all my knowledge, and the rest is construction.” (내가 느끼는 이 심장, 내가 만질 수 있는 이 세계가 존재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 이후는 모두 구성물이다.)


카뮈의 인식론적 겸허함과 이성의 벽을 가장 단정적으로 드러낸다. 이성과 경험 너머를 넘어서지 않으려는 의식이다.



이성의 역할: 신뢰하지만 한계가 있다


카뮈는 이성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그것이 삶의 궁극적 의미에 도달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지만, 세계는 불합리하고 침묵 속에 있다. 그는 이 지점에서 ‘부조리’를 발견한다. 이성은 세계를 해명하지 못하고, 믿음은 비약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는 키에르케고르처럼 신에게 도약하지도 않고, 니체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이 세계의 불합리함을 직시하며 살아가자고 말한다. 이것은 인식의 포기가 아니라, 인식의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실존적 태도이다.


“I want everything to be explained to me or nothing. And the reason is that I want everything to be explained by reason alone.” “나는 모든 것이 내게 설명되기를 원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나는 모든 것이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설명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이 문장은 카뮈의 철학적 태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는 믿음이나 직관이 아니라, 오직 이성만으로 진리를 알고자 하며, 이성이 닿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I don’t know whether this world has a meaning that transcends it. But I know that I do not know that meaning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me just now to know it.” “나는 이 세계에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의미를 내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의미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 카뮈의 인식론적 겸손함을 보여준다. 그는 의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의미가 인간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인식하며, 그 한계를 받아들인다.


“At that point of his effort, man stands face to face with the irrational. He feels within him his longing for happiness and for reason. The absurd is born of this confrontation.” "이성과 행복을 갈망하는 인간은 비이성적 현실 앞에 선다. 그 충돌이 곧 부조리이다."

: 인간의 인식 욕구는 끝없이 설명하려 하지만, 세계는 설명되지 않음으로 일관한다.




경험적이고 현상학적인 감수성


카뮈는 흄(Hume)처럼 엄격한 경험주의자는 아니지만, 그의 사고는 현상학적이다. 즉, 형이상학적 추측 없이 경험된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는 어떤 증명보다도 느낌(feeling)에서 시작한다.

부조리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의식의 상태(condition of awareness)이다.


그의 인식론은 처방적(prescriptive)이 아니라 기술적(descriptive)이다. 즉,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말한다. 그는 키르케고르의 신악의 도약이나 헤겔의 변증법과 니체의 권력의지같이 만들어낸 철학체계를 거부한다.




결론 : 희망 없는 저항


그의 인식론은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인간은 인식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직시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초월에 기대지 않고 현존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신도 없고 궁극적 의미도 없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바로 이러한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반항하며 살아가는 인간성에 있다.


결국 카뮈의 인식론은 ‘한계를 아는 이성’, ‘희망 없는 분명한 의식’, 그리고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 의미 있게 사는 인간’이라는 모순 속에서 형성된다. 그는 세계가 말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 진리는 절대적 체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살아가려는 인간의 태도 속에 있다.


“I draw from the absurd three consequences: my revolt, my freedom, and my passion.”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결론을 끌어낸다: 반항, 자유, 열정.)

: 부조리의 벽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카뮈는 그 벽 앞에서 절망하는 대신, 역설적으로 삶의 불꽃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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