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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조나단 에드워즈의 충격적인 해임 사건

프린스턴 대학교 3대 총장, 미국 대각성운동

by 오르 Ohr

18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자 부흥운동가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자 부흥운동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의 노샘프턴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며,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존경받는 목회자였던 솔로몬 스토다드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가 되었다.


에드워드는 성찬에 대하여 진실한 회심과 신앙고백이 있는 신자들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스토다드는 성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믿음의 확신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아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었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찬은 진실한 회심과 신앙고백이 있는 신자들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처럼 더 엄격한 기준은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결정적인 사건은 교회 청년들 중 몇 명이 외설적인 책자를 읽고 돌려보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에드워즈가 이를 교회 앞에서 지적하고 일부 이름을 언급한 일이었다. 그의 의도는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함이었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를 공개적인 수치로 받아들이고 크게 반발하게 되었다.


사랑안에서 진실을 가르치고 말함으로써 그는 해임 230명, 지지 23명으로 20년 넘게 섬기던 교회로부터 해임당했다. 1750년 6월에 있었던 일이다.


결국, 교회는 에드워즈의 목회 지속 여부를 두고 표결을 진행했고, 1750년 6월, 해임안이 가결되었다. 230명이 그의 해임에 찬성했고, 그를 지지한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다. 그는 20년 넘게 그 교회를 섬겼고,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서 사역했지만, 그토록 헌신한 교회로부터 해임당했다.


새로운 임지에서 가장 심오한 신학 저술들을 남긴 후에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부임 직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고, 이후 매사추세츠 서부의 변방 지역인 스톡브리지로 옮겨, 그곳 원주민을 위한 선교사로 사역하며 글을 쓰고 묵상하는 삶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그는 가장 심오한 신학 저술들을 남기게 되었고, 마침내 뉴저지 칼리지(현 프린스턴 대학교)의 3대 총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부임 직후인 1758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신앙 양심과 신학적 확신을 지키기 위해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리를 따르는 삶이 결국 더 깊은 열매와 영향력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갈라디아서에 바울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원수가 된 사도 바울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갈라디아서 4장 16절

바울이 잘못해서 교인들의 원수가 된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거짓 가르침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이 바울에게서 교인들을 빼앗아갔다. 그것은 불순한 동기였고, 바울과 교인을 이간질시켜서 교인들을 빼어온 것이다. 거짓 교사들이 교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을 통제하고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이런 상황가운데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의 일치를 설교한다.


사람들의 박수나 인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소외와 외로움도 묵묵히 견딜 때가 있는 것이다. 올바른 스승이자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인공 조나단 에드워즈도 교회에서 해임된 것은 큰 충격이자, 목회의 길이 외롭고 힘든 길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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