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쓴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되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유익하게 받아들인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매우 유익한 일 같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만일 죽음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저승으로 가는 여행길과 같은 것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오스와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나는 죽고 또 죽어도 좋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 그야말로 좋을 것일 테니까요.
소크라테스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애독한 사람임을 알 수가 있다. 그 작품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팔라메데스(Palamedes), 아킬레우스의 새 갑옷을 차지하기 위해서 오디세우스와의 경쟁에서 져서 자살한 대 아이아스(Ajax the son of Telamon), 트로이를 공격한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 오디세우스와 시시포스 등의 남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와 다른 죽음이해를 가졌다. 어떻게 다른가? 완전히 반대이다. 어떤 면에서 반대인가? 방향이 반대이다.
호메로스의 카타바시스(Katabasis)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 11권에서 저승세계를 방문하는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호메로스를 모방하여 베르길리우스도 《아이네이아》 6권에서 저승세계를 방문하는 아이네이스를 그리고 있다. 호메로스의 죽음관은 저승으로 내려가는 것, 곧 카타바시스(Katabasis, 저승으로 내려간다)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나바시스(Anabasis)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호메로스의 죽음관을 바꾸었다. 저승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로 올라가는 것, 곧 아나바시스(Anabasis)로 바꾼 것이다. 호메로스의 사후세계의 인간은 혼백이나 그림자이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리는 사후의 인간은 '불멸하는 영혼으로서의 나'를 유지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세속의 속박이 끝이며 영원한 삶과 자유의 시작을 의미했다. 인간의 영혼은 더 이상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그림자에 불과한 유령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영혼은 진짜 나를 가리킨다. 죽음은 해방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나로서는 죽음으로써 귀찮은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나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호메로스는 저승, 즉 아래를 가리키고 있고, 소크라테스는 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모두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고 보았던 것 같다.죽은 자가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토록 남아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