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권태에 대한 성찰
『1984』의 작가 죠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에서의 빈털털이 생활』(1933년) 을 읽었다. 『2029』의 작가 류광호가 '읽어볼만하다'고 말해서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었다. 죠지 오웰이 실제로 겪었던 가난에 대한 적나라한 글이다. 가난은 필연적으로 권태를 가져온다.『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10장으로 구성되었다.
"가난은 단지 배고픔이나 추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음(투명인간 취급), 무력함, 절망과 관련된 것이다." -죠지 오웰-
조지 오웰은 가난을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로 보지 않았다. 경제적 결핍은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친구들은 멀어진다. 불쌍하다고 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지워지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사라지는 그 경험 속에서 오웰은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었다”고 느낀다. 정체성과 존엄성이 서서히 무너진다.
권태는 가난을 따라다닌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먹지 못하고, 생각할 능력도 사라진다. 가난은 인간을 비인간화시킨다.
오웰은 권태를 단순한 게으름이나 나태가 아니라, 가난이 만든 감옥이라고 본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당신은 가난과 뗄 수 없는 권태를 발견하게 된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영양실조로 인해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육체는 허기지고, 마음은 무력하며,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고, 결국 꿈조차 꾸지 않게 된다. 권태는 가난이 휘두르는 가장 무서운 무기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마저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시간은 빈곤한 사람에게 있어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인간은 서서히 무너진다.”
많은 이들에게 시간은 선물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시간은 저주일 수 있다. 오웰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오히려 짐으로 느낀다. 일할 수 있는 곳도, 머물 곳도, 미래도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삶은 무한 반복되는 무의미한 시간 속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가난은 더 이상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기가 된다. 존재의 의미를 잃은 상태, 그것이 바로 조지 오웰이 직면한 가난의 본질이다.
조지 오웰은 가난한 사람을 향한 동정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이해였다. *『1984』*나 *『동물농장』*처럼 이 작품도 인간의 조건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가난이 영혼을 성장시키고 성품을 다듬는다는 낭만적 환상에 반대하며, 오히려 가난이 인간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말살시킨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물질적 궁핍 이상의 인간 존재 전체의 침식을 목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