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의 <종교개혁과 디아코니아> 2023년, 서로북스
오늘날 사회는 ‘공정’과 ‘능력주의’를 정의 실현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능력주의는 "기회의 평등"과 "보상에 대한 정당성"을 전제로 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례적 평등(geometrical equality)과도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가치와 공로에 따라 몫이 분배되어야 정의롭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의 능력주의는 이 이상을 배반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흐름을 경고하며, 사적 행복에만 갇혀 공적 책임과 연대를 상실한 인간은 결국 더 고립되고 더 불행해진다고 말한다. 타자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안녕만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고립과 외로움에 빠져 오히려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생활 속에 은거하고 가정과 출세 문제에만 헌신하는 태도는 사적 이해관계가 제일이라고 믿는 부르조아 계급의 타락한 산물이다.”
이기적인 개인주의는 결국 연대를 해체시키고 공동체를 붕괴시킨다. 이동호는 이러한 능력 중심 사고를 넘어, 한 사람의 능력보다 존엄성을 먼저 바라보는 시선으로의 전환을 강조한다(이동호, 『종교개혁과 디아코니아』, 서로북스, 2023).
성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과는 구별되는, 하나님 중심의 정의를 제시한다. 그것은 단순한 법적 평등이나 공로주의적 배분이 아닌, 관계의 회복과 공동체적 돌봄이라는 형태로 구현된다.
예수님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사의 질문을 전복시킨다. 질문의 초점은 ‘내가 누구를 이웃으로 간주할 것인가’였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누가 약한 자의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가'로 전환된다. 이웃을 결정하는 권리는 '나'가 아니라 고통받는 자에게 있다.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메시지이다. 나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하는 비유이다. 이것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윤리이며, 책임의 방향이 ‘나를 위한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하루 한 데나리온을 지급받은 품꾼들의 이야기는 능력이나 노동 시간이 아니라, 존엄성과 생존권을 중심에 둔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준다.
모두에게 같은 품삯을 지급한 것은, 그들의 필요(needs)에 따른 배분이며,
이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존엄성에 따른 품삯이다.
성경의 정의는 회개, 용서, 돌봄, 치유, 회복을 중심으로 하며, ‘공정한 보상’이 아니라 ‘공동의 생명’과 ‘하나님의 뜻’에 기초한다.
이동호는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의와 공공선에 대한 실천"으로 나타났다고 보며, 오늘의 신앙은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행복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행복추구는 권리이지만, 그것이 타자에 대한 책임으로 열려 있지 않다면, 결국은 허무와 외로움에 사로잡힐 뿐이다. “함께하는 행복이 바로 자신의 행복이다.”라는 선언은, 공동체와 타자를 향한 시선 없이는 참된 복이 없다는 신학적 고백이다.
이동호는 『종교개혁과 디아코니아』(2023, 서로북스)에서 우리 사회가 능력과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불평등과 배제를 낳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회복적 정의와 공공선, 그리고 존엄성 중심의 배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