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펼쳐들었다. 독서도, 소유의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자각할 때 충격을 받았다. 프롬은 말한다. 기억도, 배움도, 대화도, 독서도, 심지어 ‘기억’마저도 소유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통찰은 나에게 큰 자각을 일으켰다. 진정한 자유와 사랑, 기쁨은 “존재하는 방식”에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은 어떤가? 나는 얼마나 자주 ‘지식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상대를 대화 속에서 이기려 들며’,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며’, ‘내가 했던 말을 기억에 넣어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랑하며’ 살고 있었던가? 이 물음은 내 안의 깊은 성찰을 이끌어냈다.
"나는 어떤 것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이 나의 일부일 수는 없다." — 소유는 생명이 멈춘 상태이고, 존재는 살아 있는 흐름이다.
50대의 나는 수많은 배움의 순간을 지나왔다. 젊은 시절, 배움은 소유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자격증, 학위, 경력—이 모든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도구였다. 그러나 프롬은 말한다. 소유의 배움은 지식을 쌓아두는 데 그치지만, 존재의 배움은 내면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존재의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머리에 쌓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다. 50대의 삶에서 배움은 이제 ‘얼마나 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성장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자연의 섭리를 탐구하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존재의 방식으로 배운다.
기억은 소유의 방식으로 작동할 때 과거를 고정된 소유물로 만든다. “내가 그때 얼마나 성공했었는지” 혹은 “그때의 실수를 잊을 수 없다”는 식으로, 기억은 자아를 강화하거나 상처를 반복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프롬이 말하는 존재의 기억은 다르다. 그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50대의 나는 가족과 함께한 순간, 실패와 성공의 교차로에서 얻은 지혜를 떠올린다. 그 기억들은 더 이상 나를 정의하거나 묶어두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게 한다. 존재의 기억은 과거를 소유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그것을 삶의 흐름 속에 자유롭게 놓아두는 일이다.
대화는 소유와 존재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소유의 대화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내 의견을 관철하려는 경쟁이다.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나는 종종 내 생각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프롬은 존재의 대화가 진정한 소통, 즉 상대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서 서로를 마주한다. 존재의 대화는 승패가 없는 춤이다. 상대와 함께 리듬을 맞추며,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독서는 책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조우이다."
독서는 소유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책을 ‘정복’하는 행위가 된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을 아는지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프롬의 존재의 독서는 책 속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여정이다. 최근 다시 읽은 소유와 존재는 단순히 이론을 알려준 책이 아니었다. 프롬의 문장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고, 내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고민하게 했다. 50대의 나는 이제 책을 읽으며 단순히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울릴 때, 나는 책과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소비가 아니라 공명이다.
권위는 소유의 방식으로 행사될 때 억압이 된다. 그러나 프롬은 존재의 권위가 강요가 아닌 영감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50대의 나는 이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을 배운다. 후배에게 지시 대신 경험을 나누고, 자녀에게 명령 대신 대화를 시도할 때, 나는 존재의 권위를 실천한다. 존재의 권위는 타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힘이다.
그 동안 나는 소유의 방식으로 달려왔다.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성공, 더 많은 인정을 쌓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존재의 방식으로 삶을 풀어낸다. 타인과 진심으로 마주하고, 내 안의 변화를 기뻐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삶. 이 새로움은 나를 경이로움으로 채운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은 소유로 채워질 때 공허해지고, 존재로 채워질 때 충만해진다고. 50대의 나는 이 깨달음을 가슴에 새긴다. 배움은 더 이상 점수를 위한 경쟁이 아니며, 기억은 과거를 붙잡는 족쇄가 아니다. 대화는 승리를 위한 논쟁이 아니고, 독서는 지식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다. 권위는 타인을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촉매다. 이 모든 일상 속에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삶은 새롭게 빛난다. 프롬의 통찰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더 깊이 존재하며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이 새로움에 대한 감격은, 50대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