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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8. 2021

'에블린(Eveline)'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단편 4


그녀는 대로에 엄습하는 저녁을 지켜보며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창문 커튼에 기대어 있었으며 그녀의 콧구멍 속엔 먼지 쌓인 크레톤 천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녀는 피곤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영원히 집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죽은 후 집안 살림과 어린 동생들의 뒤를 돌봐야 하는 에블린은 열아홉 살 처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게에 나가 일하고 받은 월급을 아버지에게 모두 바쳐야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에블린에게 윽박지르고 호통치며 손찌검까지 하려고 위협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병까지 얻었다. 어머니의 삶처럼 살기 싫은 그녀는 좋아하게 된 선원 프랭크를 따라 밤배를 타고 도망갈 계획을 세워놓았다.


19세의 소녀가장 에블린(Eveline)이 저녁에 창가에 앉아서 창밖의 거리를 바라본다. 에블린은 영원히 아일랜드를 떠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yres)로 갈 작정이다. 뱃사람인 애인 프랭크(Frank)가 그녀를 데리고 바다 건너로 멀리 가기로 했다. *바다는 위험과 혼돈의 상징이다.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추억을 떠올리고, 또한 정든 집안의 가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녀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떠나기로 했다. 해방이다. 독립이다. 가난과 억압과 학대로부터 자유이다.


창밖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수년 전에 이 길거리와 집들이 있던 곳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벌판이었다. 그 때 뛰어놀던 오빠 어네스트는 지금은 죽었고, 동생 해리(Harry)는 떨어져 있어서 용돈을 보내주고 있으며, 엄마도 죽었다. 소녀가장인 에블린은 집이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서 늙은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 멀리 떠나려니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든다.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녀를 학대하지만 때리기까지는 안한다. 아버지는 에블린이 번 돈을 다 가져가고, 오히려 딸에게 '돈을 헤프게 쓴다'고 나무란다. 아버지는 아들들과는 달리 여자아이라고 에블린을 좋아해주지 않았다. 어네스트는 죽고, 해리는 집을 떠나 있어서 아무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에볼린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어렸을 때 잘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나 살아계셨을 때 호우스(Howth) 언덕으로 가족 소풍을 갔던 일, 딸이 아팠을 때 아버지가 유령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토스트를 만들어주신 일 등이 생각난다.



애인 프랭크, 부에노스 아이레스 선원


에블린은 결혼할 것이다. 사람들을 그녀를 존중하며 대해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대접받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프랭크와 또 하나의 삶을 탐험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친절했고, 남자다웠으며, 열린 마음을 지녔다. 그녀는 그 날 밤 배로 그의 아내가 되어 떠날 것이며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집이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yres)에서 살 것이다.


에블린은 휴가를 맞아 잠시 더블린에 와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뱃사람 프랭크와 같이 영원히 아일랜드를 떠나려 한다. 프랭크는 그녀를 존중하고 부드럽게 대해준다.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보헤미아 소녀' 공연을 보러 극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조금 노래를 한다. 장난 삼아 그녀에게 '팝핀(Poppen)'이라고 불러준다. 에블린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기분이 고양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자친구를 싫어한다. 그래서 몰래 만날 수밖에 없었다. 


밤이 거리에 깊어졌다. 에블린은 써 놓은 두 개의 편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는 동생 해리에게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이다. 아버지가 최근에 늙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딸을 그리워할 것이다. 가끔씩 아버지는 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생각이 난다.




죽은 엄마를 떠올리며



창가에 앉아 있을 때  거리에서 오르간 연주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죽어갈 때 에블린에게 당부하고 약속하던 날이 떠올랐는데 그날도 이 오르간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에블린에게 집안 살림과 각들을 돌보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생활고에 지쳐서 미쳐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미쳐가니까 그 헌신적인 희생노릇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의미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지껄여 댔다. "데레바운 세라운! 데레바운 세라운!(Derevaun Seraun, Derevaun Seraun!)" 이 무의미한 소리의 반복은 지치도록 헌신하고 수고하는 일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녀는 더욱더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데레바운 세라운! 데레바운 세라운!(Derevaun Seraun, Derevaun Seraun!)" 이 말은 게일어(Gaelic 아일랜드 토속어)로  '쾌락의 끝에는 고통이 있다.'(At the end of pleasure, there is pain.) 라는 뜻이다.


그녀는 공포의 갑작스런 충격에 일어섰다. 탈출해! 그녀는 탈출해야한다! 프랭크는 그녀를 구원해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삶을 줄것이다, 아마 사랑까지도. 그러나 그녀는 살기를 원했다. 왜 그녀는 불행해져야만 하는가? 그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프랭크는 그녀를 팔로 감싸선 꼭 껴안아 줄 것이다. 그는 그녀를 구원해 줄 것이다.



항구에서의 마비(Paralysis) 경험


다음 날이면 바다 건너 먼 나라로 떠나간다. 복잡한 생각이 그녀를 엄습했다. 노스 월 부두, 항구에서 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는 마비가 되어 말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세상의 모든 바다가 그녀의 마음에 넘실거렸다.  그는 그 속으로 그녀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익사시킬 것이다. 그녀는 철난간에 두 손을 꼭 쥐었다. "가자!가자!"(프랭크) "안돼! 안돼! 안돼! 그건 불가능해."(에블린) 그녀의 손은 미친듯이 난간을 붙들었다. 그녀는 번민하여 외쳐댔다. "


프랭크는 그녀를 불렀다. "에블린, 에비(Eveline! Evvy!)" 프랭크가 그녀를 끌고 가는데, 에블린은 마치 프랭크가 자기를 바다에 빠트릴 것만 같이 느껴졌다. "안돼! 안돼! 안돼! 그건 불가능해!" 에블린은 철난간을 붙잡고 저항한다. 에블린은 프랭크를 마치 남처럼 쳐다볼 뿐 그대로 마비되고 말았다. 사랑도,  작별도, 어떠한 표현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에블린은 창백한 얼굴을 무력한 동물처럼 그에게 소극적으로 고정시켰다. 그녀의 눈은 사랑과 작별의 표시나 그를 알아본 듯한 어떤 뜻도 그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노스 월 부두. 그녀의 눈은 사랑과 작별의 표시나 그를 알아본 듯한 어떤 뜻도 그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왜 에블린은 떠나지 못했나?


탈출하려 했는데 좌절되었다. <어떤 만남>에서 목표지인 더블린 발전소에 가지 못했고, <애러비 바자회>에서 친구 누나에게 선물을 사주지 못했는데, <에블린>에서도 또 목표가 좌절되었다. 집을 떠나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마비되어 떠나지 못했다. 가난과 학대를 피해서 애인 프랭크와 함께 저 멀리 아르헨티나로 떠나려 했는데 그 목표가 좌절되었다. 


에블린은 혼자서 떠나기에는 너무 어렸고,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힘이 부족하다. 애인 프랭크를 만나서 기회가 있었으나 아일랜드를 떠나지 못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국을 떠나서 타국에 간 사람들을 원망하는 모양이다. 조이스도 망명객이었다. 그러나 조이스의 소설에서는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 무책임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일랜드 내에 있는 사람들이 은혜를 모른다고 비판한다. 감사할 줄 모르고 딸 에블린을 학대한 아버지가 그 전형이다. 


에블린은 어머니는 평생 고생하다가 나중에는 치매(madness)에 걸려 실성한 소리-의미없는 소리-를 지껄이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일상에서의 고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한다.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죽도록 고생해봐야 치매에 걸릴 뿐이었다. 소녀 가장 에블린이 가정을 책임지고 가난과 싸우는 것은 너무 큰 책임이었다. 아일랜드를 떠나기에는 용기가 없었고 겁도 났다. 


아일랜드를 떠나기 위해서 배를 타기 전에 그녀가 마비되었던 것은 세상의 모든 바다가 그에게 덮쳐서 그 바다에 빠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바다가 그녀의 마음에 넘실거렸다.  그는 그 속으로 그녀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익사시킬 것이다. 이제 그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희망을 보장할 수 없다. 아마도 그녀의 엄마의 일생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 소설 첫 머리에 뛰놀던 아이 가운데 불구 아이 키오(Keogh)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그녀의 현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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