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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3. 2021

'애러비'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단편 3

애러비 바자회(Araby)


<애러비 바자회(Araby)>는 소년의 짝사랑을 다룬 단편소설이다. 부모가 아닌 삼촌과 숙모 집에 살고 있는 소년이 맞은편에 살고 있는 친구 맨건의 누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누나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차를 타고 갈 만한 거리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토요일에 바자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본인은 천주교 피정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바자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소년은  대신 자기가 바자회에 가서 누나를 위해서 선물을 사 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하는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소년은 토요일 밤에 바자회에 다녀오겠다는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토요일 밤이 되었다. 삼촌은 술집에 들렸다오는지 저녁이 돼도 들어오지 않는다. 소년은 초조하게 기다린다. 시계 소리가 심장을 때린다. 방을 왔다갔다하면서 바자회에 갈 생각에 사로잡힌다. 9시쯤 되어 삼촌이 문에 열쇠를 대고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이 식사를 반쯤 했을 때, 바자회에 갈 차비와 용돈을 달라고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은 소년이 바자회에 보내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깜빡 잊고 있었다. 소년은 돈을 받아서 기차를 타고 가려는데 기차가 바로 출발하지 않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밤 10시 10분 전에 애러비 바자회에 도착했는데, 너무 늦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몇몇 상점이 문을 열었는데, 맨간(Mangan) 누나에 줄 선물을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니 너무 비싸다. 소년은 '좌절'을 맛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아일랜드를 사랑하는 작가의 사랑과 좌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막다른 골목인 북(北) 리치몬드 가(街)는 ‘크리스천 형제 학교‘에서 아이들을 풀어줄 때 빼고는 조용한 거리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2층짜리 집이 거리의 막다른 끝에 이웃하는 집들과 떨어진 채로 서 있었다. 거리의 다른 집들은 안에 품은 소박한 가정들을 의식한 채로 서로 차분한 갈색 얼굴을 한 채로 마주보고 있었다. 이전 집주인은 성직자였는데, 뒤편 응접실에서 죽었다. 모든 방의 공기는 오랫동안 갇혀 있어 퀴퀴한 냄새를 풍겼고, 주방 뒤의 버려진 방에는 낡은 쓸데없는 종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소년은 부모와 살지 않고 삼촌과 숙모 집에 살고 있다. 그 집은 사제가 살았던 집인데 그 사제는 죽었고, 책들을 몇 권 남겨두었다. 소년은 그 책들을 좋아했다. '막다른 골목', '거리의 막다른 끝'이라는 표현이 소년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모든 방의 공기는 오랫동안 갇혀 있어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는 것은 작가가 느낀 아일랜드 사회를 암시하고 있다.



맨건의 누나에 대한 묘사


소년은 앞집에 사는 친구 맨건의 누나를 엿본다. 그녀가 등교할 때 자기도 집에서 나와서 뒤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는 그 누나를 앞질러 걸어간다. 자기가 그녀를 뒤따르고 흠모하는 감정을 숨기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는 것처럼 한 것이다. 맨건 누나와 말해 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소년은 언제나 그 누나 생각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숙모하고 장 보러 시장에 따라갔을 때 그 누나 생각을 했고, 집의 뒷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그녀를 생각했다. 그 누나에 대한 소년의 감정이 너무도 빠져 있어서 그 누나에게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맨건의 누나가 차를 마시라고 남동생을 부르려고 문간에 나올 때면, 우리는 그늘에 숨어 그녀가 거리를 위아래로 둘러보는 것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녀가 계속 기다릴지 아니면 들어갈지 확인하려고 기다렸고, 만약 계속 기다렸다면 그늘에서 나와 포기한 듯이 맨건네 계단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뒤에서 반쯤 열린 문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해 실루엣이 보이는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누나 말을 따르기 전에 항상 누나를 괴롭혔고, 나는 난간에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몸이 움직이면서 드레스도 함께 하늘거렸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좌우로 흔들렸다.

매일 아침 난 거실 앞쪽에 엎드려 그녀의 집 문을 쳐다봤다. 블라인드는 밖에서 내가 보이지 않도록 1인치 정도만 남기고 내려져 있었다. 그녀가 문밖으로 나오면 내 가슴은 설렜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내 책을 집어 들고는 그녀를 따라갔다. 난 항상 그녀의 갈색 머리를 내 눈 안에 두고 있었고, 우리가 갈라서는 지점에 가까워질 때면 발걸음을 빨리해 그녀를 지나쳤다. 이 일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났다. 단순한 몇 마디 섞어본 것 외에는 그녀와 말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내 모든 멍청한 피를 끌어 모으는 듯했다.


어느 날, 맨건의 누나가 소년에게 애러비 바자회에 갈 것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애러비(Araby)는 아랍을 말하는데, 동양적이고 이국적인 바자회이며, 단편소설 <어떤 만남>처럼 모험, 해방, 탈출 등을 연상시킨다. 그 누나는 그날 교회 수련회(피정)에 가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내가 바자회에 간다면, 누나를 위해 뭔가 들고 올게요." 소년은 바자회에 가서 그 누나를 위해 선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누나와의 짧은 만남은 소년을 몰아지경에 빠트렸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놀이터에서나 교실에서 온통 누나 생각뿐이다.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소년은 토요일 바자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애러비 바자회


토요일 아침, 바자회가 열리는 날이다. 소년은 아침에 삼촌에게 바자회에 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삼촌이 회사에서 돌아와 기차 교통비를 받기를 기다렸지만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도록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머서 부인 - 남편은 죽었다 - 이 난롯가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8시쯤 되어서 '밤공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며 머서 부인이 떠나갔다. 소년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방을 왔다갔다했다. "바자회는 다음에 가야겠다"고 숙모가 말한다. 소년은 마음이 타들어간다. 밤 9시에 삼촌의 열쇠소리가 들렸다. 삼촌이 저녁을 반쯤 먹었을 때 소년은 바자회에 갈 돈을 조금 달라고 했다. 삼촌은 바자회에 간다는 말을 깜빡 잊고 있다가 "이미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라고 주저하자 숙모가 "그냥 애한테 돈 줘서 보내세요. 한참 당신을 기다렸다구요."라고 말한다.


얼마 안 되는 동전을 받아 들고 소년은 버킹햄 거리를 걸어내려 갔다. 텅 빈 열차의 삼등칸에 않았다. 기차는 시간을 질질 끈 다음에 천천히 역을 빠져나갔다. 소년은 빈 기차에 혼자 있었다. 마법적인 이름, '애러비(ARABY)' 이름이 적힌 큰 건물에 도착했다. 소년은 도자기와 꽃잎무늬 장식된 차 세트 등을 살펴봤다. '뭐 사려고 하냐?'는 질문에 '아뇨, 괜찮아요.'라고 소년이 말한다. 물건이 너무 비싸다. 소년의 돈으로 살 수가 없다. 소년은 좌절을 맛보았다.


나는 더 이상 있는 것이 무의미하단 것을 알면서도 물건들에게 조금이라도 정말로 관심을 보이는 척하려고 그녀의 가게 앞에서 서성거렸고, 천천히 돌아 바자( Bazaar) 한가운데로 걸어 내려갔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1페니 동전 두 개를 6펜스 동전에 떨어뜨렸다. 회랑 한쪽 끝에서 소등한다는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홀의 윗부분은 완전히 어두웠다. 어둠 속을 바라보며 나는 내 자신을 허영심에 의해 조종당하고 조롱당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은 분노와 비통함으로 이글거렸다.




부정적 에피파니(현현): 좌절된 목표


<어떤 만남>에서 학교를 땡땡이치면서 더블린의 전기 발전소가 있는 곳까지 가려고 했던 모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듯이, <애러비>에서도 연모하는 누나를 위해서 선물을 사려고 했는데 좌절되었다. 맨건 누나를 위한 뭔가 이국적인 선물을 사는데 장애물이 너무도 많았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고, 너무 비싸서 살 수도 없었다. 소년은 돈이 없고 삼촌에게 받았어야 했는데, 삼촌은 술 마시고 오느라고 토요일 밤 9시에나 들어왔다.


소년을 긴장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시계의 째깍거림, 머서 부인의 장황한 수다, 삼촌이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 소년이 바자회에 가는 것을 삼촌이 잊어버렸음, 기차가 시간을 질질 끌며 늦게 진행함, 상점의 영국 여자가 말을 걸 때 소년은 마음이 깨어지는 것 같았다. 바자회는 문을 닫는다. 어둠이 짙어진다. 부정적인 에피파니(현현), 흠모하는 누나에 대한 소년의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남는다. 소년은 좌절, 마비를 경험한다.


아일랜드 사람들 자신(삼촌, 머서부인 등), 잉글랜드, 그리고 로마천주교가 아일랜드를 좌절시키고 마비시킨다는 것을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애러비> 마지막 구절이다.


이제 홀의 윗부분은 완전히 어두웠다. 어둠 속을 바라보며 나는 내 자신을 허영심에 의해 조종당하고 조롱당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은 분노와 비통함으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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