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리, 남원큰엉경승지, 표선해수욕장, 목장카페
< 5. 13. 토 >
어제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엄리 돌염전 앞 해변.
웨딩 사진을 찍던 신혼부부들.
왜 그렇게 입맞춤을 시키는 것인지.
메뚜기도 제철이 있다고, 그때 아니면 가뭄에 콩 나듯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한복을 입고 그것도 석양에 다른 절벽 위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젊은 남녀들.
뜨겁다 뜨거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제 그 민어는 내 것이었어.
임자도로 기승이 만나러 가던 놈이 분명해.
젊은 머슴아가 슁 혼자 가버린 것은 가시나가 민어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
비가 갠 7시 10분.
구엄리로 내려가는 반듯한 도로, 한가하다.
조금 한적하다 싶으면 나타나는 절들.
그러고 보니 교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도 무슨 연유가 있을 터.
아들은 고기를 살리는 망을 집는다.
묶음 낚시와 지렁이 두 통, 새우 한 통, 도래까지 모두 합해 42,000원.
바닥이 훤히 보이는 엷은 현금카드로 계산하는데, 제가 계산하려 했단다.
결국 성질 급한 내가 제일 가난하다.
고기나 원 없이 잡아라.
데리러 올 때까지 전화하지 말고 신물이 나게 고기와 대화 나누기를 바란다.
표선으로 가는 길.
산록도로에 접어드니 한라산은 반쯤 안개에 덮여있다.
1100도로는 비상등을 켜지 않고는 무서워서 가기 힘들다.
자주 가는 곳이라 안개만 아니면 손을 놓고도 차가 혼자서 갈 수 있을 텐데.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날씨가 다를 수 있나.
변화무쌍한 날씨가 제주 사람들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한쪽에 줄을 서는 것은 자칫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체 속을 보여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집 안채와 사랑채에 부모 자식이 같이 살더라도 밥을 따로 먹는다는 것은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것보다,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은 아닐까.
반도의 끝 자그마한 섬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응어리진 아픔 같은 것은 아닐까.
아내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숲을 보며 제주의 나무는 행복하겠다고 한다.
형제 많은 다복한 집 같다고.
비자림의 1,000년 나무를 빤히 쳐다볼 수가 없었는데, 나무랄 것 같아 무서웠단다.
얼마나 같잖게 보겠느냔다.
나무는 다 보고 있었겠지, 누가 잘못하는지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남원 쪽으로 내려서니 한없는 귤밭이다.
구불구불 칸을 나눈 밭담.
제주의 밭담을 쭉 펴면 만리장성보다 길다지 않는가.
붉은 벽돌 빨간 지붕 집들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확실히 이곳으로 오는 횟수가 적기는 했다.
소낭식당(서귀포시 남원읍 일주동로 7905)
메밀면이 색다른 흑미짬뽕 맛집, 애호박 찌개와 구분하기 힘든 비쥬얼.
특별한 것 없는 큰 길가 중국집인데, 어떻게 다 알고 찾아오는지.
음식 맛만 있으면 아무리 꼭꼭 숨겨놓아도 다 찾아낸다.
그런 세상이다.
남원큰엉해안경승지.
최근 가장 뜨겁다는 올레 5코스에 있는 해변.
한반도처럼 나온다는 숲 사진 때문일까, 줄을 서야 한 컷 담을 수 있다.
기묘한 절벽들이 인디언추장얼굴, 호두, 유두 등 보는 이들의 생각대로 모습을 달리 보여준다.
방목했던 소들이 떨어졌다는 우렁굴은 섬뜩하다.
안전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깎아지른 절벽이다.
주변으로 깨끗한 펜션들이 즐비하고, 카페 편의점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진 것은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진이 멋지게 나온다는 것도 한몫 톡톡히 했을 것이다.
표선해수욕장
엷은 안개비를 헤치고 해안과 1132번 도로를 오르내리며 모래사장이 깊게 들어가 바다를 만난다.
서핑하는 사람들이 마치 물개처럼 가물가물하게 멀리 보인다.
육지에서도 이만큼 긴 모래사장을 보기 어렵다.
모래사장 가운데로 물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아, 밀물 때는 정신 차려보면 바다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을 것 같아 무섭다.
한라산 반대쪽에서 낚시하는 아들은 비바람이 너무 거세서 일단 철수했단다.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이니 적당히 쉴 곳을 찾으라고 이른다.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제주 날씨다.
목장카페 BATTI
중산간 쪽으로 한 30분쯤 올라왔나, 목장들이 보인다.
말에게 당근을 주고 싶다는 둘째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찾은 곳이다.
이시돌 목장 옆 우유부단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다.
아이들과 가족이 탈 수 있는 다양한 자전거, 작은 전동 오토바이, 심지어 경운기까지 있다.
허벅지가 터지라고 페달을 밟고 있는 불쌍한 아빠들.
동영상을 찍겠다고 뒤를 따르는 엄마들.
산다는 것은, 부모로 산다는 것은 비도 바람도 피할 수 없는 즐거운 고통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지만 짧은 거리부터 2.5km 목장을 한 바퀴 돌아오는 승마 체험도 있다.
카운터에서 얇게 썬 당근 한 바구니를 산다.
막대에 꽂힌 10개에 5,000원.
동그란 나무 벽을 두고 말 4마리가 빙빙 돌고 있다.
입을 비틀어 당근만 쏙 빼는 것이 많이 먹어본 솜씨다.
아이 말에게 먹이고 싶은데 못생긴 녀석이 달려와 밀치고 다 제 차지다.
아주 죽방이라도 쳐버리고 싶다는 둘째는 빨리 가잔다.
정이 뚝 떨어졌단다.
호주머니만 두둑하다면 아이들 데리고 와 한나절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장소다.
전복소라물회로 배를 채운 아들은 날씨가 우선해 다시 낚시를 시작했단다.
중산간 동네의 슈퍼는 옷을 팔아도 두부는 없다.
오래 보관할 수 없는 것은 들여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좀 비싸도 편의점이 물건은 신선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중산간 도로에 편의점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침에 먹었던 짬뽕 국물과 한림매일시장에서 사온 머리고기에 두부를 넣고 기가 막힌 국을 만들어낼 것이다.
포장해 온 탕수육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기를 살려서 가져오겠다며 야심차게 산 고기망에 어랭이 세 마리.
콩알만 한 고양이가 꿈틀거리는 제일 큰 놈을 물고 숨는다.
돌풍에 비닐봉지 위에 올려놓은 옆 사람 지갑과 함께 휴대폰이 바다로 빠졌다나.
아들이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찾으러 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단다.
50마리 정도 잡았는데, 어랭이 용치놀래미라 모두 살려주었단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낚시꾼의 말에는 화약 냄새가 많이 난다.
낚시에 정신이 나간 아들과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는다.
녀석은 낚시와 여행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스쿠버를 하는 일행이 고급 어종을 잡았다며 내일 숙소로 배달하겠다는 준홍이.
악천후 속에서 골프를 치며 제주와는 사대가 안 맞는다고 했었다.
반 팔만 준비했다는데 춥지는 않았는지.
옆 동네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꼭 다른 나라에서 친구를 만난 듯 겁나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