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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낚는 강태공

모들한상, 배낚시, 해성도뚜리

by 고주

< 5. 12. 금>

새벽부터 낚시를 가겠다던 아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6시쯤 일어나 메모해둔 어제의 일과를 정리해서 글로 만들고 나면 대략 9시 정도가 된다.

때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돼 묻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제주의 새벽을 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뀐 일상과 정해지지 않은 미래들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나 할까.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리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노는 중에도 나태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 날 깨우는 것 같다.

한 달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

놓기는 너무 아까운 여행기를 붙들고, 이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임을 느낀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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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한상(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1359-1)

중산간과 해변 사이의 아담한 연화지를 품고 있는 하귀리의 마을, 예쁜 패랭이꽃이 핀 도로 옆에 있다.

세한도에서 본 듯한 각진 창고 모양의 건물이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좁은 돌담으로 만들었고, 내부는 계단을 이용해 간이 이층으로 변화를 주었다.

연화지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다.

모들 돈가스, 고사리 보말 파스타, 샐러드 파스타, 모들 해물가지 커리.

이태리 요리에 제주 해물을 넣어 창조한 메뉴들이다.

이것은 전문가의 연구로 만들어진 작품이 분명하다.

친절의 도를 넘은 푸짐한 사장님의 용모와 말씨가 잘 꾸며진 내부의 분위기, 음식 맛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내 짐작이다.

파스타에 고사리를 커리에 가지를 돈가스 소스에 전복을 넣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대단하다.

제주는 맛에서도 국제화되고 있다.

물가도 따라서 국제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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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항 (13:00 ~ 17:00)

애월 하귀리의 작고 허름한 항구다.

바리(붉바리 다금바리)를 잡는 배를 예약한 아들.

도건호 선장님의 평이 너무 좋아 아내가 추천했단다.

7명의 손님을 태우고 나간다는 자그마한 배에 오르는 아들.

어째 마음이 짠하다.

오늘따라 바람도 없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바다도 잔잔하다.

에라 모르겠다, 함께 가자.


40분 동안 먼바다로 달려가는 배.

한라산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닻을 내릴지 궁금했는데 그냥 물결에 떠밀리도록 놔둔단다.

그래서 멀리 왔는가 보다.

수심이 80m이니 바닥까지 낚시가 내려가는 것도 한참이다.

릴의 줄이 풀리는 것을 멈추면 바닥이니, 그때부터 일정한 속도로 30번쯤 감는다.

낚시대 끝이 톡톡 치면서 움직이면 입질이다.

돔은 먹이를 빨아 먹으니 놀라지 말고 같은 속도로 계속 감으면 된단다.

그래야 미끼인지를 눈치채지 못하고 꼴깍 삼킨다나.


아무리 바람이 없는 날이라지만 먼바다는 간혹 큰 덩치의 파도가 밀려온다.

배가 흔들리면 머리도 흔들흔들, 속은 울렁울렁.

일찍부터 음식을 반납하는 슬리퍼 신은 아주머니.

오기 싫다고 버티던 아들, 지켜줘야 할 아저씨까지 단체로 혼수상태다.

아가씨 둘, 젊은 남자 하나.

제주에서 알바하는 친구들이라는데, 담배도 맛나게 나누어 피운다.

전동 낚시대까지 준비한 노신사.

저녁은 한치 배, 내일은 서귀포로 간단다.

서울로 올라가 먹을 고기는 잡아야 한다며 투지를 불태운다.

예약에 없던 나와 저녁 한치잡이에 예약한 노신사가 추가되어 아홉이 된 모양이다.

배에서 준 장비를 쓰지 않고, 자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반대로 잡은 것이 낮 바리 낚시는 덤인가 보다.

낚시는 지루한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을 맘대로 단정한다.

물살에 힘이 없으니 줄이 보여 고기들이 눈치를 챘다.

바닥이 펄이어서 고기가 먹이를 보지 못한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는, 줄 오르고 내리는 일만 시계바늘처럼 뱅뱅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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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상해요.

줄이 안 감겨요.

꿈쩍도 안 해요.

빨간 바지 힘 좋게 생긴 아가씨.

바닥에 걸렸겠다며 다가가는 선장님.

몇 번 감는데, 힘을 써보더니.

와 큰놈인데, 무지하게 큰놈인데.

낚시대를 빼앗으며 자기가 하겠다는 저 가시나의 근성은.

그렇게 십분.

내 줄에도 기미가 온다, 옆 머슴아도 줄을 감는다.

고기가 돌아다니며 줄을 다 감았다고 천천히 올리라는 선장님의 지시.

애석하게도 내 것은 잘렸다.

선장님은 큰 뜰채를 들고 대기 중이다.

보인다. 와.

누런 배가 보인다.

선장님의 팔뚝에 힘이 실린다.

내 다리만 한 민어다.

무려 20kg, 아가씨가 두 손으로 어렵게 버티는.

요즘 드물게 보인다는 선장님.

사진을 찍는다, 길이를 잰다, 무게를 단다.

나는 보지 않았다.

끊긴 내 낚시줄이나 빨리 매주었으면 좋겠다.

세 번이나 자리를 옮기고, 나에게도 와 줄 것이라는 희망은 망상이었다.

끝없이 오르고 내리는 줄 감기에 두 팔목이 먹먹하다.

세상에 한심한 일이 낚시고, 그것을 구경하는 것이 한 수 더 뜬 한심이다.

바다에 처음 나왔다는 가시나에게 가려면 차라리 나에게 오지.

잘 든 칼로 안 아프게 해줄 것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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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엄리 돌염전 해안, 해성도뚜리.

고사리 오겹살과 해물짬뽕을 몽땅 내가 쏜다.

무려 160,000원을 투자하고 빈손이라는 핀잔과 함께 받은 벌칙.

나는 방생해줘야 하는 참돔을 한 마리 잡았지만, 아들은 입질 한 번 받지 못했다.

배를 타나 갯바위에 있으나 그냥 운이라며 허탈해하는 녀석이 안쓰럽다.

내일은 새벽부터 나가겠다니 믿어봐야지, 벵에돔.

사실 갯바위에서는 손바닥보다 크면 월척인데, 고걸 묻지도 않고 던져버리냐.

밥상이 흔들흔들, 병이 따라 휘청휘청.

꼭 배에 타서 밥을 먹고 있는 것 같다.

80m 깊이에 낚시줄을 내려본 사람 있으면 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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