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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Sep 19. 2023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 8

2012.01.07

<18>

- 2012년 1월 7     


오전 7시 20분. 

일출봉 왼편 올레 1길, 앞이 훤히 트인 곳에 차를 세운다.

차 안에서 바람을 피하고, 라디오의 음악에 귀를 내주고 있다.   

  

몇 점 떠 있는 구름 테두리가 금색으로 칠해지고 있다.

산소 용접기로 철판의 구멍을 뚫듯이 

구름 사이로 빨간 구멍이 점점 커지다가 사라지기를 몇 차례.

보에 쌓인 아기가 살짝 눈을 뜬다.

고개를 든다.

배시시 웃는다.

온 하늘과 바다는 빨간 출렁임으로 가득하다.

웃음소리는 화살이 되어 바다를 가르며 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아내의 손을 꼭 쥐며 기도한다.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더도 말고 지금 마음만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시간을 멈추시어 지금 만큼만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

떠나는 우리를 위해 올해 들어 처음 보여주는 일출을 감사한 마음으로 안는다.     


성산항 내 수협공판장.

고등어와 옥돔을 산다.

싸지 않는 가격이지만 신선하고 또 제주 바다에서 노는 녀석들일 것이라 믿고서.

      

두 번째로 발권을 마친다.

대합실 옆 식당, 막걸리 한 사발로 아쉬움을 달랜다.

첫 손님이 안주도 시키지 않고 막걸리 한 병(4,000원)이라니.

눈치 굉장하게 주는 아줌마 미워.     


제주도는 들어오기보다 나가기가 훨씬 어렵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하고 짐도 확인받아야 한다.

무슨 간첩이라도 잡는 모양이다.     


12시 30분 성산항 출발. 2시 30분 노력항 도착,

회진항 대정 식당. 노래리 물회(소 25,000원).

걸쭉한 안양 동동주. 열무김치에 시큼한 초고추장으로 맵게 버무린 노래미.

처음 먹어본 음식이지만 다시 찾을 것 같다.      


광주까지 오는 동안 말수가 부쩍 줄어든 아내, 아쉬운 모양이다.

고마운 자전거는 1대당 20,000원에 병원으로 입원시킨다.     

오직 둘만의 시간으로 채운 우리 부부.

25년을 한 이불속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다 알지 못한 마음.

평생을 보여주어도 더 보여줄 것이 남아 있는 사랑.

6일의 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내 나이 오십하고 하나.


매일 글을 손질하며 제주도에서 살아버린 지난 한 달.

내 인생의 노트 위에 굵은 줄로 가득한 그리움이었다. 끝.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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