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속 사정

2023.12.06. 수

by 고주

비가 온다더니 아침 예보에는 사라졌다.

우산을 들려다 놓고 발걸음을 뗀다.

생각보다 날씨는 차갑지 않다.

평상시 같으면 급행이 와야 하는 시간인데, 7 전역 도착했다네.

기다리느니 보통열차를 타자.

수원에서 빠르게 움직였건만 간발의 차로 문이 닫힌다.

차라리 여유나 부릴걸.

넘어진 김에 누웠다 가자.

권선역 깨끗한 화장실에서 볼 일 다 보고 가자.

앉자마자 공습해 오는 모기떼.

숲길을 가로지르는 신호등은 또 왜 자꾸 걸리느냐고.

그래봐야 15분 늦은 것, 수업 한 시간 전.

목이 갈신거리고, 잔기침이 예고 없이 터진다.

쉬지 않고 묻고 대답하는 수업이라 목에 부담이 된다.

온풍기는 계속 틀어져 실내는 건조하지.

노력으로 되지 않은 빈약한 성량이 평생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긴장감이 한강 물줄기처럼 흐르는데, 은이는 책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다.

통계라 숫자를 세고 더하는 일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일까?

다 보는 교실에서 그 이유를 묻기는 힘들다.

조용히 수업 후에 따라오라고 이른다.

“너무 어렵냐?”

“아니요, 1교시는 좀 힘들어서요.”

“잠을 많이 못 자는 모양이지? 학원에서 몇 시에 오는데?”

“11시 정도예요.”

“숙제도 있을 거 아니야.”

“예”

코스모스 줄기처럼 하늘하늘하고 주먹만 한 아이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내 경험으로 수업을 잘 들으면 70점은 따고 들어간다.

선생님들이 시험문제를 다 가르쳐주잖아.

표시만 잘해 놔두어도 시험공부가 쉽지 않겠냐고 어깨를 토닥여준다.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

엄마의 사나운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중학교 1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다.

옆 반에 붙여주어야 할 수행평가 안내문.

이동수업이라 교실이 비어있다.

까불이 휘를 불러 부탁한다.

“내가 왜요?”

이놈 봐라, 옆에 있는 철이에게 맡긴다.

다른 반에 들어가기가 쑥스러운 것일까?

아님, 자기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인가?

흔들리는 눈망울, 자주 들었던 왜 나한테만 그래요?

피해망상, 그것은 아니겠지.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어찌했든 요즘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창밖의 나무들이 허리를 휘며 버티고 있다.

교실은 달아올라 민이의 볼이 붉어졌다.

내 목은 찢어질 듯하지만, 이마에는 잔 땀이 벤다.

맨 앞줄에 앉아있으면서도 석불이 된 미.

간단하게 설명해 주어도 목석 그대로다.

수업이 끝나고 내 사무실로 가는 창문에 서서 묻는다.

“초등학교 때는 중간은 했어요.

중학교는 갑자기 어려워져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학원도 끊었거든요.”

사정을 깊게 묻지 않겠다고 했다.

확 풀어져 있는 눈빛, 깊이를 알 수 없는 표정.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겠거니.

딱 두 페이지씩만 읽고 수업받았으면 좋겠다.

어느 시간이든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달랜다.

그렇게 하겠단다.

확신은 없다.

잔치국수 아니 잔치라면.

삶은 계란 반쪽, 수육, 뽀얀 국물, 탕수육에 김치.

오늘은 팔을 걷어붙이고 배식을 돕는다.

“탕수육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걸걸한 목소리의 아낙.

식판이 넘치도록 퍼 준다.

“감사합니다.”

바로, 이 맛이지.

오늘 급식 봉사는 완벽했다.


주제선택 테셀레이션.

동영상을 보고 나머지 시간은 조별 활동으로 작품을 제출해야 한다.

전반에서 했기에 순서대로 차근차근 안내하면 수월할 줄 알았다.

웬걸, 맨날 날 골치 아프게 하는 고 녀석들이 또 뭉쳤다.

서로 미루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몇 번이고 주의를 주고 독촉했건만.

색칠은 고사하고 가위로 자르지도 않았다.

힘겨루기도 아니고 이리저리 떠넘기기만 한다.

초라하게 제출된 작품들.

놀면서도 자기 할 만큼은 한 여학생들.


중학교는 무조건 남녀공학을 해야 한다고.

누나들 보고 하나라도 배우려면.

그렇지 않으면 사람 되기는 틀렸다고.

중학교 1학년 보고 조용히 하라는 것은,

개 더러 짖지 말라는 말이고

새 보고 울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해야지.


사과 소녀는 목발 짚고도 복도를 활보하면서 온갖 것을 간섭하느라 바쁘다.

저 괄괄한 목소리.

여군으로는 딱인데.

수학 28점에 세상을 얻은 것처럼 날뛰었는데.

군 문턱만 넘을 수 있다면 장군은 따놓은 당상인데.

아가 다리나 빨리 나아라.

근데 왜 비는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이여.

keyword
이전 24화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