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요일

2023.12.04. 월

by 고주

우리 반은 달라요.

점수를 알려달라는 녀석들에게 너무 떠들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고 펄펄 뛴다.

점수는 공개되지 않으니 자기만 알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한다.

분명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보이는데, 마지막 답까지 도달하지 못한 안타까운 아이들.

눈으로 공부하지 말고 전략을 세우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이른다.

하루아침에 수준이 확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어! 하고 발아래 너른 들판이 보이는 것이라고.

제법 잘 하겠거니 여겼던 아이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학원 다시 다녀야겠다 한다.

학원이 문제가 아니라 수업을 더 열심히 들어야 해, 건방 떨지 말고.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100점 맞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혼자만 알고 있으라 했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무슨 재미.

경쟁상대가 앞으로 나오면 주르르 따라 나오는 녀석들.

실수라도 하나 발견되면 환호성이다.

겨우 10점 맞은 녀석들은 왜 또 환호성이여!

저번보다 잘 맞았다나.

몰래 숨기느니 떳떳하게 대범한 척하자, 그런 심보인가?

다르긴 뭐가 달라, 믿는 내가 잘못한 것이지.

제일 긴장되는 시간.

월요일 오후 주제선택시간.

동영상 확인,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까지 20장 복사.

풀과 가위 두꺼운 종이 준비.

조별로 작품을 제출해야 한다.

오늘은 기본 모형을 완성하면 된다.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상의하고, 각 도형을 색칠해서 붙여라.

테셀레이션은 겹치지 않아야 하고 빈틈이 있으면 안 된다.

똑같은 모양이 중복해서 나타나도록 해라.

영상까지는 잘 보았는데, 색칠부터는 대충이다.

조별로 작업을 하는데 흥미가 없다.

뭐든지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집중도가 높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겠지.

엄포를 놓았었는데, 효과는 별 신통치 않다.

그래도 다음 주까지 뚝심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개인 작품으로 방향을 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오늘은 뭐 써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교무실에서 복사하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옆으로 오신다.

“내년 초에 혹시 계획 있으십니까?”

“아직 없습니다.”

“그럼, 일주일만 3학년 수학을 좀 맡아주십시오.

담당 선생님이 인사작업을 들어가셔야 해서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딱히 계획이 없기도 했지만, 사정을 봐주려면 시원시원하게 오케이 해야 한다. 못하겠으면 단호하게 확답해야 하고.

속맘은 따로 두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은 질색이니까.

그런데 내 맘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잘 모르겠다.

함께 놀러 가자는 회비를 내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기다리는 일이 있다는 것.

좋았던 기억을 꺼내 보는 것.

그 맛에 며칠 쉭 지나겠지.

걱정했던 월요일은 또 지났다. 휴.


keyword
이전 22화선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