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2023.12.27. 수

by 고주

<결혼기념일>


만 36년, 그 긴 세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포기가 아니고

다름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구르고 굴러

동글동글해진

강가의 돌멩이

날 따라 쉬지 않고 온

또 한 돌멩이

두 돌멩이가 맺어진 날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뛴다.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계단

그곳에서도 뛴다.

달려오는 숭어 떼 실 날만 한 틈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계속 아래로.

분명 내가 맨 먼저였는데,

스쳐 지나가는 아낙네가 있다.

옷은 매일 바뀌지만

가방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하얀 곰 인형은

그대로다.

그녀가 빠른 것이 아니다.

내가 느려진 것이다.

급행을 타기 위한 다급한 새벽,

만나는 정해진 사람들.

정해진 삶.



영혼 없는 도깨비들이 우글우글한 반에서 보내야 하는 연속 두 시간.

쉬는 시간만큼은 피하고 싶다며 우리 방으로 피신해 온 노인 선생님.

모두가 힘들어하는 그 반.

호루라기 담임 선생님의 탓이 아니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여야만 소통이 되는 반.

너도나도 목에 핏대를 세워야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반.

작두날을 뛰는 접신한 무리들.

말귀를 알아먹고 싶지 않은 아이들.

선이 없는 장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투닥거리는 싸움.

남자고 여자고 구분도 없다.

이것들이 나중에 나를 먹여 살리기나 할까?

답답하다.

합창 연습이라는데, 그냥 절규다.

수업이 아니니 마음 툭 내려놓고 바라볼 뿐이다.

부담임인 반 학생부 절반을 점검한다.

자잘한 글씨 폭탄.

모두 다 모범생이다.

수년 담임하는 동안 처음으로 아이들이 미워졌다는 선생님.

행동 발달 사항은 조선시대 예의 바른 서당 아이들 것이다.

이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했는데.

아니 꼭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명 다 살지 못하고 운명한다.

대한민국이여 제발 뒤로만 가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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