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8. 목

by 고주

아이들은 오전에 ‘노량’ 영화를 본다.

‘서울의 봄’ 때문에, 서울이 들썩들썩한 뒤끝이라 조심스러웠겠다.

아주 오래전, 강진군 군동면 평리에서 군동국민학교 다닐 때.

읍까지 4km를 걸어서 단체영화를 보러 갔지.

이순신 영화였지, 아마.

커다란 화면에서 펼쳐지는 전쟁.

장면 장면에 압도되어 고치 속에 웅크린 애벌레가 되었다가,

나쁜 놈들이 쳐들어오면 조마조마해져 간이 쪼글쪼글해졌다가,

멋지게 쳐부수고 승리하면서 영화가 끝날 때,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

요 녀석들에게 그런 감성이 있기는 할까?

오전을 다 털어 학생부를 뚫고 들어간다.

항목별로 먼저 출력하고, 활자를 읽으며 정정할 내용을 찾는다.

두 번째 정정이 끝났지만, 아무래도 미덥지 않은 나.

오늘은 스스로 하는 점검이다.

수두룩하다, 언제나 안 나올까?


수업할 때는 합창 연습 시간을 달라고 생떼를 부리던 녀석들이,

시큰둥하다.

반장 연이는 악을 쓰며 독려하지만, 통 말을 듣지 않는 머슴아 몇.

남학생들만 세워놓고 연습시킨다.

왜 두 녀석 때문에, 단체로 연습을 더 해야 하느냐고 대드는 좀팽이 또 몇.

내 속, 알겠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머리가 띵하게 아플 것이다.

춤동작까지 맞추려면 날 새겠다.

연습까지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이 좋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시간은 ‘드림브랜딩’

예쁘고 늘씬한 현직 여자 아나운서가 오셨다.

프로는 솜씨가 다르다.

말 몇 마디에 자지러지고, 심각해지고.

배신감까지 든다.

나이 들어 제일 후회하는 일 중에,

꿈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도 있단다.

감히 네가?

그 정도 공부로 가능이나 하겠어?

밥은 빌어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조그마한 것, 가능한 것부터 찾아봐.

그래서 잃어버린 기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영상 속에서는 아직도 식지 않은 꿈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내게도 그런 꿈 몇 개 있다.

섬마을 선생님, 자전거로 전국 일주, 원활한 생활영어 습득 등.

자신의 꿈을 열심히 쓰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다닌다.

농부라고 써놓고 머리를 묻는 서.

무슨 사연이기에 저 여린 여자아이가?

강사 선생님도 힐긋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아버지 직장이 논이라고 썼던 오래전 제자가 생각난다.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

동네방네 소리치고 다녀, 너희의 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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