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4. 화
우르릉 우르릉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잠자기를 죽도록 싫어하는 내 손녀처럼 하노이는 잠들지 못했다.
쉬지 않는 베트남.
기용이는 얼굴이 퉁퉁 부었다.
간밤에 노크 소동이 있었던 모양인데, 말로는 먼저 자라고 해 놓고 10초도 못 돼 코를 골았다나.
방을 따로 잡아야겠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기용이.
체면이고 예의고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절박함이려니 생각하자.
오늘 저녁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늦게 자야지.
투는 마사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했는데, 무사히 도착했겠지.
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없다.
장마에 계곡물 쏟아지듯 거리에 넘실거리는 차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까지.
어떻게 부딪치지 않고 잘 갈 수가 있나?
길을 건널 때는 뛰거나 서면 사고가 난다나.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면 알아서 비켜 간다고.
말이 쉽지 도저히 적응 안 되는 일이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몸이 붕 떠서 땅 위를 구를 때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지는 그 기분.
즐거운 시간은 더 길게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왜곡.
그래서 젊을 때는 시간이 안 간다고 하고, 재미있는 일이 없어지는 노인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하는 것이다.
어제의 하루를 떠올리며 몇 자 적는다.
하노이에서 하루는
쇠라가 한 점 한 점찍어 그렸고
타닥타닥 타자기가
자막을 써넣었고
소리는 축음기에서
치직치직 끓으며 흘러나왔고
땡볕에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지며
슬로로 틀어졌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보냈던
긴긴 하루 같았다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되었다
맛있는 조식을 든든히 먹고 호텔을 나선다.
기름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매미는 또 귀를 뚫겠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역사에 관심 많은 기용이를 위해 민속박물관으로 첫 일정을 잡는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쭉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리 삐쭉 저리 삐쭉 날뛰는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선생님 손발이 선풍기가 되었다.
밖에 나오면 세상의 선생님들은 다 피폐해진다.
폭삭 늙는다.
54개 부족의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Viet족이 85.3%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의 남쪽에 있다 해서 Viet남, 우리가 흔히 부르는 베트남이라 한다나.
북쪽 소수민족에 관심이 많은 투.
안 가본 북쪽의 조용한 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는 기승.
아무리 봐도 천생연분인 디.
저놈이 보통 눈이 높아야지, 투가 좀 작기는 하다.
그래도 머리를 주억거리며 바보처럼 웃는 모습은 맹해 보이면서도 백치미가 있다.
투를 열심히 교육시키는 기용이, 주인과 손님이 바뀌었다.
아주 물 만난 고기다.
젊은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 한다.
대학생들이라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엄청 많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알맹이가 단단한 느낌.
소수민족까지 잘 배려했고, 규모보다 내용에 더 신경을 썼구나 싶다.
국토가 길어서 기후도 언어도 다를 것이고 생활풍습도 당연히 다르겠지.
그래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고.
어느 민속박물관이나 그것이 그것인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어서 그럴 것이다.
“선생님 좀 재밌게 해 드려라. 아그들아.
놀러 가셨다가 우울증 생겨서 돌아가시겠다.”는
중훈이에게 시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과생의 감성을 탓하기는 했지만, 해석이야 읽는 사람의 맘이고 그렇게 느꼈다면 쓰는 사람의 설득력이 부족한 것일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쓸만한 물건을 대놓고 자랑하는 어느 부족의 나무 조각품을 사진 찍어 보낸다.
언제 베트남에 왔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