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초록 2

2023.03.14

by 고주

2023. 3. 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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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할아버지를 보러 가자.

함께 산다. 함께 먹는다. 함께 일한다.

독립과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팔뚝 두꺼운 프랑스, 날로 먹겠다는 일본, 도와주는 척 제 잇속만 챙기는 놀놀한 미국, 항상 아래로 보는 중국과 붙어서 당당히 베트남을 독립시켰고, 54개의 부족을 통합한 국부.

자신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쓰지 않은 검소한 사람.

나라와 결혼한 평생 홀몸인 사람.


그 위대한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사람들을 뚫고 가야 하는 고난이다.

학년 초라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많은가 보다.

아침 세 시간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민속박물관에서 기용이 강의가 너무 길었나 보다.

묘역 참배는 어렵고 박물관이라도 가잔다.

세상이 무너지듯,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는 기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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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까지 압수당하고 찾은 한 기둥 사원.

기둥 하나에 사원이 세워져 있다.

아들을 원하는 사람은 왼쪽, 딸을 원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두 바퀴 돌면 아이를 점지해 주신다는 영험한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졌으며, 5,000동 화폐에 인쇄되어 있는 국보 1호.

사람들을 헤집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포기하지 않는 통일 베트남의 후예 투는 어떻게 공안을 구워삶았는지 생가 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허락받는다.

생가와 집무실로 관람객들을 거슬러 가다 묘역 뒤쪽에서 묵념한다.

순전히 기용이의 권유지만 위대한 독립운동가, 불멸의 게릴라를 위해 흔쾌히 고개를 숙인다.

기용이는 속으로 울고 있을 것이다.

수도 한 복판에 이렇게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추모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진 베트남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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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현지식을 먹겠다는 준홍이의 으름장에 괜찮겠느냐는 투의 걱정을 달고 찾아간 배부른 할아버지가 잉어를 낚는 인형이 서 있는 짜가 한 가지만 하는 식당.

1871년에 문을 열었으니 152년이 된 셈이다.

파나 당근 잎 같은 채소 위에 생선 살 토막과 영락없는 곱창처럼 생긴 내장이 올려진 전골냄비 엉덩이가 불에 달궈진다.

고기가 다 익으면 고수와 양파, 고추를 곁들인 물국수와 함께 먹으면 된다.

쫄깃한 내장과 민물고기의 탄탄한 살이 담백해서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완전 꼬리꼬리한 갈치창젓 같은 소스에도 도전, 그리고 매우 흡족한 척?

점심과 저녁때만 잠깐 문을 연다는데 주인장의 거만한 태도는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지만, 맛있으니 좀 비싸도 용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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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 사업이 어려워졌고,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규모의 부채를 안고 살았어도 모임에는 꼬박꼬박 나갔단다.

힘들다고 인상 써 봐야 전화만 받지 않는다나.

두문불출한다고 일이 해결된다면 그리하겠지만, 답은 세상에 있고 사람에게 있단다.

세상 선배 민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는 동으로 동으로 달린다.


끝없는 농장들, 수시로 나타나는 호수며 강.

비행기로 아무리 포탄을 퍼부어도 비 온 뒤 죽순처럼 나타났던 게릴라의 땅을 실감한다.

첫날 딱지를 뗀 통은 고속도로도 80으로 달린다.

좀 빨리 가보자는 원성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못 알아듣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은근히 베트콩의 고집이다.


하노이도 그렇지만 시골에도 도로로 향하는 건물들이 세로로 길다.

분명 무슨 연유가 있겠지 했는데, 도로의 길이를 전 국민의 수로 나눈 값이 한 집이 지어질 수 있는 폭이란다.

모두가 평등하게, 모양이야 상관없다.

섬뜩하지만 명쾌한 사회주의의 원칙 아닌가?

고개가 끄떡여지기는 하지만 가슴으로 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내가 기용이보다 확실하게 회색분자다.


너른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른다.

그렇게도 애타게 준홍이가 찾는 패션후르츠 주스는 없다.

가도 가도 한가한 고속도로, 모든 차들이 추월해 간다.


하이퐁에서 빠져나와 할롱만으로 가는 길.

뾰족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맹그로브 숲이 펼쳐지는 해안도 나타난다.

강 하구의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립을 시작했다나.

천 대는 넘어 보이는 굴삭기, 수십만 대는 되겠다 싶은 트럭이 꽉 메운 바다. 숨 막히는 장관이다.

중국 자본이 여기까지 슬금슬금 발을 들여놓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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