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호랑이 손잡고 1
16화
숨쉬는 철학
2024.03.25. 월
by
고주
Apr 13. 2024
머리는 왜 하해요?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렇지.
20살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밀려 들어오는 시간에 등 뒤에 딱 붙어 말을 끊지 않는 자랑스러운 3학년 특별반.
매일 꼭 무슨 말인가를 하고 떠나는 유일한 아이.
첫 시간 제일 진도가 늦은 7반.
아이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기후변화대응 체험 시간이라며 가서 푹 쉬시란다.
복도를 내다보니 조용하다.
일단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지난 시간에 했던 내용이나 확인할 참이다.
어찌어찌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마 교과에서 기후변화대응에 관한 내용으로 수업하라는 계획인가 보다.
사과 8개와 귤 12개를 각 접시에 똑같은 개수로 놓을 때, 제일 많은 접시의 개수는?
최대공약수를 이용한 문제다.
4개의 접시를 준비하면 되는데, 만약 6개를 준비했다면 2개가 남아 처분해야 하는 낭비가 발생한다.
수학을 잘하면 효율적인 재료의 사용으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냥 떠오르는 데로 둘러 붙였다.
와하고 박수를 치는 아이들.
내가 생각해도 제법 그럴싸한 기후변화대응 수업 시간이었다.
5층 3학년 교실이 있는 복도로 들어선다.
한 여학생을 상대로 세 명의 남학생이 발차기 장난을 한다.
가만 보니 여학생은 태권도를 좀 한 모양이다.
신사들은 여자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라고 말렸지만, 등 뒤에선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돌아 정색하고 지켜보니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춤 배워놓으면 춤바람 나고, 칼 선물하면 그 칼로 사달이 난다고 했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도 했다.
어중간한 운동이 저 가스나 망치고 있다.
그나 참 찌질한 머슴아들.
첫 교무회의.
17가지의 교육이 있다.
대부분 유인물로 대처하고, 중요한 몇 가지만 전달 교육한다.
시험문제 지문에 사람 이름을 쓰면 안 된다.
A, B, C 하든지 갑, 을, 병으로 해라.
글자의 크기, 동일한 양식, 글자체....
전년도 문제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학생 학부모 선생님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다.
수업 중 어느 부분이 시험문제에 나온다는 말도 하면 안 된다.
왜 안 나왔느니, 어느 반에서는 말해주지 않았다느니 민원이 많단다.
275명의 요 양호 학생들.
무슨 비염 환자가 이렇게도 많은지.
각종 알레르기가 셀 수도 없다.
보건 선생님의 겁주기가 한 참 진행된다.
교감 선생님의 맛깔난 말솜씨로 조금은 어려운 문제들을 잘도 넘어간다.
개학이 한 달도 넘어가지 않았는데, 시험출제를 하셔야 하는 수고를 하셔야 합니다만 교사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요?
오늘 아침 서방님이 허리 통증으로 꼼짝하지 못 해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했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결재 문서를 자세히 읽어보지도 못했다.
남편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했다.
가정의 평안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갑질 없는 직장문화, 공무원 청렴의무를 잘 지켜보자.
1달이 다 되어가는데, 기회가 없어 소개를 못 해드렸습니다.
매일 학생 맞이를 해주시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저와 똑같다고 느껴지는 선생님입니다.
“집이 가까워 학교에 나오는 일이 즐겁습니다. 열심히 하겠으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이제 끝나는 날까지 후문은 내 차지가 되었다.
3년 동안 6 학급을 줄이고 나니, 학교가 눈에 띄도록 조용하다.
교육활동에도 적합한 규모가 되었다.
주변의 학교들은 모두 반이 증가했다.
저는 퇴임하는 업적으로 좋은 교육환경을 만든 교장으로 남게 되겠다.
두 가지 경영방침에 대해 다시 말씀드린다.
첫째, 수업 중심학교가 되는 것이다.
질문이 있고 상상력이 넘치는 수업, 학생이 주체가 되는 행복한 교실 만들기.
둘째, 자유로운 학교문화 정착.
소모적인 통제가 없는 분위기. 교복 단속이나 상벌제는 없는 것으로.
교사와 학부모 학생 간 갈등을 중재하는 교장의 역할.
쉬운 시험문제, 특히 물음을 꼬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해 주었으면.
학생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단연 시험과 성적이다.
평균이 70점 이상이 나오도록 신경을 많이 써달라.
몇 달 남지 않은 교장선생님의 열의에 박수를 보낸다.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교육철학이 숨 쉬는 학교.
아이들이 복 받았다.
나를 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keyword
기후변화대응
기후
변화
Brunch Book
호랑이 손잡고 1
14
유클리드
15
무승부
16
숨쉬는 철학
17
힘듥겠다
18
후회는
호랑이 손잡고 1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30화)
1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고주
직업
교사
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구독자
57
제안하기
구독
이전 15화
무승부
힘듥겠다
다음 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