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미소

2023.03,16

by 고주

2023. 3. 16. 목


1일 1 국수를 포함한 조식을 거나하게 먹고 기다리는 호텔 라운지.

어제 밥 달라고 떼를 쓰던 할아버지가 일행과 함께 앉아 있다.

이마를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깊은 주름, 치켜뜬 눈꼬리, 팔자 입 주름.

몰래 훔쳐보는데, 쉽지 않겠다.

일행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더니 혼자 가방을 밀고 슁! 바람처럼 나간다.

뒤따르는 할머니, 굽은 허리가 외롭고 쓸쓸하다.


닌빈의 바이딘 사원을 향해 차는 먼 길을 떠난다.

당나귀 귀 같은 섬들이 키가 작아지더니 시골길로 접어든다.

오토바이들이 길을 메우고 학교로 몰려가는 풍경.

시속 80km는 절대로 넘지 않겠다는 통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린다.

조심하라고 하는 것인지, 비키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차 안의 우리 귀에서 매미가 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유난히 도로변에 접하는 면이 짧은 건물들, 그 연유를 알아보니.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도로변의 길이를 전 국민의 세대수로 나누면 약 3.6m가 된단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길이.

그래서 앞은 좁고 뒤로 길쭉한 모양이 된 것이다.

개성은 없지만 평등함에서 오는 편안함.

사회주의식 원칙에 고개가 끄떡여지면서도 왠지 좀 무섭다.

사람의 욕심까지도 깔끔하게 나눌 수 있는 잣대.

그것을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


가난한 투의 아버지는 제법 살았던 어머니와 혼인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번듯한 공무원이 되었단다.

은퇴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데 농토는 국가에서 지급된다고.

작물은 지정된 것만 키워야 한다.

논은 변형할 수도, 사고팔 수도 없다.

언제나 통제가 가능한 사회.

소유가 조금씩 인정되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공룡의 나라.


제법 더운 날씨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오토바이들로 장사진을 이룬 동네를 수도 없이 지난다.

여기도 교육열은 대단한 모양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하교하는 제법 큰 아이들도 보인다.

하롱의 섬들을 옮겨놓은 것 같은 산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멘트 공장의 굴뚝들도 산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높게 높게 하늘로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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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염소를 먹어야 한다는 기승이.

동네 부녀회에서 오셨는지 1층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

식당 옆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산 쪽으로는 홈스테이 한다는 집들도 보인다.

수육은 부드럽고, 볶음은 다소 질기다.

깍두기처럼 썬 고기를 구웠고, 탕은 아욱국 맛이 난다.

작은 무화과로 담은 동치미는 시큼하면서도 개운하다.

무화과는 깨물면 톡 터지면서 입안에 상큼한 향을 품어준다.

염소 누린내를 걱정했지만 무난한 점심이다.


도로를 건너는 흑염소들.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듯 차는 점점 시골로 묻힌다.

야자수 나무들이 어우러진 낮은 산 턱에 우뚝 솟은 팔각정 같은 탑.

주차장은 정비하는지 면이 거칠다.

머리로 쏟아지는 햇볕.

반드시 전기 열차를 타야 한다.

21만 평이라니 걸어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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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딘 사원으로 들어서면 정원을 감싸는 길고 완만한 오르막 계단이 나온다.

오백 나한 석상이 쭉 늘어서 있다.

각기 다른 표정과 포즈다.

분명 이름 있는 부처님들의 형상이리니.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들어보라고 발목을 잡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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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 개의 불상이 정원을 한 바퀴 감고 서 있다.

정원으로 들어서서 어마어마한 종도 보고, 22m 탑 위에 올라가 주변의 전경도 본다.

대 회당의 부처님은 규모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럽겠다.

우리도 이만큼은 된다고 알통에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불교 전시회다.

우리도 살만큼 됐다고 과시하는 것이라는 기용이는 완전 뿔이 났다.

조금 멀기는 하지만 원래의 절을 가보고 싶단다.

외국의 손님이나 중요한 행사에 정부 인사들이 찾는 곳이라니 약간 관제 냄새도 난다.

과거에는 불교국가였는데 현재는 불교 신자가 약 15%란다.

사회주의가 되면서 70%는 무교이고 7% 정도가 천주교라는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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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전의 나무뿌리까지 살려 만든 관세음 상을 보고 나오는데, 휴대폰을 들고 쭈뼛쭈뼛 다가오는 아저씨.

한국 사람이 신기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가?

그래, 너무 비싸게 굴지 말자.

유명인도 아닌데 얼굴 좀 팔리면 어떤가?

투와 몇 마디 나누는데, 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난처할 때 나오는 맹한 저 표정.

기승이가 베트남 사람인지 물었단다.

원래 좀 검기도 하지만, 베트남 햇볕이 가만두지 않았으니 완전 현지인이 된 우리 기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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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탄압을 몸을 태우면서 저항했던 영원히 타지 않는 심장 틱꽝득 스님의 동상이 마지막 나가는 문 앞에 모셔져 있다.


오래된 고즈넉한 절을 상상했던 기용이의 억울한 심사만큼 습도 높은 더운 날씨다.

수수 주스 한 잔으로 속을 달래자.

어린 옥수수 대 껍질을 이로 벗겨내고 오독오독 씹으면 풀냄새가 올라오는 달큼한 맛.

딱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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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끼고도는 좁은 길.

산줄기를 피해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지며 오른다.

자전거를 타는 많은 외국인.

라이딩을 해야 제맛이라는 기승이.

빌리고 싶어도 자전거가 없단다.

좁은 마을 길을 지나 코딱지만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멀리 산머리에서 흘러드는 강 주위로 아기자기하게 가꾸어놓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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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봉우리. 항무아.

낮은 돌계단을 오른다.

무릎이 시원치 않다는 현지인 기승이도 결국 따라온다.

다양한 인종들의 전시장이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높지는 않다.

하지만 주변의 경치는 입을 다물 수 없다.

육지의 하롱베이라고나 할까.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데 위험하지 않게 넓게 고치고, 주변을 잘 볼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전망대를 더 만들어 놓으면 세계 어디에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겠다.


염소고기집이 많은 이유를 알았어요

닌빈의 가파른 산을 오르려면

부잡한 염소가 되어야 했거든요

처음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 신선들이 사는 산 강 들

서양사람들 틈에 끼어

수북한 술병으로 잘난체를 합니다


부척 흰 수염이 자라는 걸 보니

흑염소는 아니었나 봅니다


아직 숨겨진 곳이라는 느낌이다.

싱싱한 날것의 맛.

이대로 그냥 두어도 나름 차별화된 관광지가 되겠다 싶기도 하고.

저 수많은 서양인이 찾는 이유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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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척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진 기용.

숨 가쁘게 달려온 거리의 전사는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한쪽 가슴이 휑해진 것 같은 기분은 나만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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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뷰 숙소.

이 도시에서 제일 좋은 호텔인가 보다.

수영장도 있다.

짐을 빨리 풀고 시내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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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만두, 누들볶음, 새우볶음, 꼬치, 두부...

현지 맥주와 곁들이는 저녁은 환상이다.

우리만큼 식탁 가득 음식을 시킨 곳은 없다.

오늘은 통도 합류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참 부끄럼을 많이 타는 젊은이다.


옆자리에는 서양 노부부가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편안하고 충만한 분위기.

내 모습을 그 자리에 옮겨놓고 생각해 본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여행자 거리는 북새통이다.

밤차에서 내리고,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엇갈린다.

도로를 바라보며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들을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유럽의 어느 시골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아직 덜 알려진 여행지를 찾는다는 것은 물가가 덜 비싸다는 것이고.

더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일 수도.

졸부 할머니 셋이 앉아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며 웃는다.

저 비릿한 눈빛은?

2층으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여자친구 눈화장을 돕다가 늦었는지 흑형이 뻘쭘하게 커튼 안에서 나온다.

분위기가 조금 수상하지만 휩쓸릴 수밖에 없다.

갈수록 손에 힘이 빠지는 안마사.

잠이 온다는 것은 대충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것.

한없이 나오는 맥주.

우리는 최고의 손님.

콧대 높은 서양인 틈에서 술병으로 폼 좀 잡는다.


빡빡이 한국 사람이 식당을 묻는다.

도저히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밖에 나오면 무조건 현지식을 먹어야지.

김치찌개 드시려면 집이 최고예요.

밤 11시가 넘어간다.

신나게 같이 술을 마시던 옆자리 남녀가 이별한다.

아마 이곳에서 처음 만나 시간을 보내고 각자 숙소로 가는 모양이다.

참 깔끔한 빠이빠이다.

저것도 젊음의 특권.

많이 부럽다.


손녀와 영상통화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코 고는 문제는 신경 쓸 틈도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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