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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출근길

2024.04.19. 금

     

아내는 밝은 옷을 입으란다.

금요일이고 해서 청바지를 골랐는데.

결국 청 청이다.

윗옷은 바지에 넣었으면 좋겠단다.

내 똥배는 어쩌라고.

들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망태.

그래 문밖에서는 내 맘인데, 살짝 눈감아 주는 것이야 몇백 번도.     

 


출근길


신록이 녹음으로

꽉 찬 아침 출근길 나무숲

빨리 크는 내 손녀 같은

빨리도 지나가 버린 내 청춘 같은

잠시 헉헉거리고만

가쁘고 뻐근한 한나절 꿈이었나     

듬직한 어깨에서 나는 비릿한 내음

길고 긴 길, 짊어지고 가야 할 짐

꼭 좋아 보이지만은 않구나

서두르지 말거라

오늘만 생각하라고    


    

담임 선생님의 열정으로 크는 8반.

매일 벌어지는 이벤트.

오늘은 ‘과자 맛있게 먹고 수학 수행평가 열심히 봐’

사방이 아이들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등교하던 황가 놈.

교실에서는 보리꽃 필 때 날뛰는 숭어,

새끼 낳은 멧돼지는 저리 가라다. 

필시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겠거니.

시험지를 받은 녀석이 진지해졌다.

20분이 조금 넘었을까, 시험지를 탁 덮는다.

영원히 다시 펼 것 같지 않은 결연한 표정, 나를 우습게 본다는 듯 경멸의 입꼬리.

채점은 해봐야겠지만, 저 녀석 혹시 천재?

화장실을 가고 싶다기에, 웃으며 보내주었는데.

얼굴 근육이 마비된 것 같다.

억지로 웃은 것이 들통나지는 않았겠지.    

 

포도청이 날마다 북새통이다.

틱 장애로 마음고생이 많은 아이가 서럽게 운다.

그냥 장난이었다고 뻘쭘하게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말하는 원숭이.

아가 살아남아야 한다. 

제 발로 걸어 다니는 짐승들은 사는 곳이 정글이야.

결국 혼자서 걸어가야 해, 별도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길은.  

 


다시 태어나면

 

다시 태어나도 상대방과 같이 살겠느냐고?

절대로 엑스라는 여자

별거 있겠느냐고 동그라미하는 남자

왜?

받아본 사람은 더 잘해줄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고

주는 사람은 더 이상은 어렵다는 포기고

받기는 쉬울지 모르나,

있어야 주지 

오늘도 밭 갈고 들어가는 망태

해는 떨어지는데

꾸덕이 가볍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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