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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손녀의 봄

2024.04.18. 목

     

햇볕의 강도가 달라졌다.

이마를 땅 때리는 손맛에 정신이 얼얼하다.

뽀얀 얼굴이 구릿빛으로 바뀌겠지.

늘 나는 체육 선생님으로 알아주었다.

검기에 바로 가지전 반질반질한 붉은 얼굴빛, 제법 굵은 허벅지도 한몫했을까?

나쁘지 않았다.    

 

어제 왕복 달리기를 미루었거든요.

5교시인데 밥 먹은 것 다 토하잖아요.

그런데 6교시에 배드민턴을 했어요.

오늘 1교시에 달리기, 또 기타를 쳐야 해요.

제 팔이 부러지면 119를 불러주세요.

횡설수설 토끼 눈을 굴리며 한참을 떠들고는 교실로 들어간 효정.

내가 후문으로 돌아가면 무슨 재미로 등교하려나?

맘먹은 것 다 하려면 오늘도 부족하겠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 채원이는, 어젯밤 잠자기 전 백번도 넘게 유치원에 안 간다고 다짐을 받았었단다.

무엇이 발길을 잡는지도 알 길이 없다.

선생님도 딱히 특별한 점이 없다는데.

이제 만 세 살도 안 된 녀석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오직 싱숭생숭한 봄 때문이다.     



봄   

  

생초보 엄마 내 딸

저것이 호강에 초를 쳐요 초를

친구 많겠다

반겨주는 선생님 계시겠다

왜 유치원을 안 간다는겨    

 

32개월 내 손녀 채원

제 맘 저도 몰라

심란한 얼굴로 고개만 절레절레      

톡톡 터지는 봄

따라서 터지는 두 여자의 속    


 

수행평가.

200자를 써야 하는 1번 논술형 답안지.

글자 수 세다가 날 새겠다.

‘소수가 실생활에서 써지는 예를 적어보시오’에서 예가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다 풀어놓고 엎어지는 아이.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하는 아이.

시험은 언제나 어렵다.

세 반은 오늘, 두 반은 내일이다.

채점해서 학생부 과목 세부 특기사항에 올려주려면 또 한 짐이다.

수업하는 것이 낫지, 서서 감독하는 일이 더 고역이다.     

치료 중인 선생님께 연락해 보고, 어려우면 꼭 더 있어 달라는 부탁은 받았다.

그 후로 감감무소식이니 맘이 바빠졌다.

동아리도 자유학기제 예술 활동도 기록해 주어야 한다.

바로 떠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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