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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시험 날 아침

2024.04.29. 월

     

보름 만에 후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짧아진 옷차림.

생소한 얼굴들.

'환경을 깨끗이' 하는 방안을 설문하는 아이들.

1학년 애송이 머슴아 다섯이 피켓을 들고, 사탕과 스티커로 길을 유혹하고 있다.

‘다회용품 사용하기, 가까운 거리 걸어가기, 재활용품 사용하기, 기타’

주춤거리다 놓쳐버린 다수.

어떻게 과학수행평가를 할 거나.

여학생 팀이 오고 나서는 그것마저도 정문으로 쫓겨난다.

책을 들고 오는, 뭔가를 묻고 답하는, 매우 어두운 표정으로 하품하면서 후문을 통과하는 2, 3학년.

시험 보는 아침의 표정이다.

자전거 몇 대가 늘었고, 맨 나중에 뛰어오던 녀석이 여유 있게 걸어 들어오고 있다.  

   

시정이 달라져 있다.

50분 수업에 20분 휴식.

2, 3학년 시험 시간표에 맞추었나 보다.

서로의 얼굴이 생소한 국립학교의 문화.

자상하게 챙겨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꼰대.

미리, 예상하고 발로 뛰어야 한다.

숨 가쁘게 따라가는 일정.    

 

전반 수업하시는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는 유인물을 보내왔다.

문제는 평이하다.

숙제로 내줄지를 물었더니, 모두 피를 토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자율적으로 풀게 해 달란다.

필요한 사람만 가져가도록 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냥 묻어두면 학부모의 민원이 뻔하게 빗발치리라.     


시험이 끝나고 실의 두 선생님은 조퇴하고 나가신다.

시험 때는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비정규직인 나는 수업이 없더라도 그냥 학교를 지키기로 한다.

안전지킴이 선생님들의 활동비 지출 품위를 작성한다.

3월 기안 문서를 찾아 꼼꼼하게 내용을 정정한다.

되도록 내가 할 일은 내 손으로. 

도움은 즐기는 순간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

무조건 내 힘으로.

내일 말일까지 4월이 마감되면 출근부 활동일지를 스캔해서 파일에 첨부해야 한다.

배우기는 했는데 가물가물하다.

내일 일은 또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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