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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봄이다

2024.04.30. 화

     

너무 이른 시간에 잠이 깨어, 제발 데려가라고 사정해도 정신은 점점 또록또록.

일어나 아르키메데스, 가우디, 뉴턴 그러니까 3대 수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마침 숫자의 규칙성을 수업하려다 보니 가우디 그분이 나와서.

두어 편의 유튜브를 보고 늦게 다시 잠에 들었더니, 처음 들어보는 수학자까지 꿈속이 더 이상 들어올 사람이 없도록 만원이었다.

아이고 눈 빠지겠네.     


소나무 꽃가루 날리는 차 없는 후문 앞 산책로.

해를 가리는 높은 아파트 숲.

여유 있게 이야기하며 입장하는 아이들.

얼굴을 마주 보고 웃어주고.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 주고받고.

몇은 정문에서도 보았던 얼굴.

학교로 오는 어느 길목쯤에서 선택을 고민했을.     

주머니에서 버터소금구이 쿠키를 내미는 아이.

“나 주려고?”

눈빛으로는 왜?라고 물었다.

“고생하시잖아요.”

집을 나서면서부터 생각했을까?

아니면 문 앞에서 나를 보는 순간 떠올렸을까?

쿠키는 모른다.

아무렴 어때, 어제저녁 자기 전부터 생각했을 것이라고 믿어주자.

예쁜 그 마음만 생각하자.

매일 뛰어서 문을 닫고 들어오던 녀석이 연이틀 걸어서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슬쩍 썩은 미소를 날릴 줄도 안다.


내일은 새달을 또 문 앞에서 시작한다.     

시험 1교시가 끝난 2. 3학년 복도를 둘러본다.

가방이 모두 복도에 나와 있다.

와글와글 시장바닥이다.

방금 보았던 시험문제를 내놓고 무엇이 맞네 틀리네 목에 핏대를 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소풍 나온 아이들 같다.

두 학년이 섞여 있느냐고 물었더니 같은 반만 본단다.

시험에 민감하다고 들었는데, 부모들만 그런가 보다.     


얌전이 5반.

유독 꼼지락거리는 아이들이 많다.

잔다고 꼬지르는 놈, 종이를 뭉쳐 몰래 던지는 놈.

앞자리 남자아이의 등을 간질이는 년.

두어 달 함께 부대끼며 살았으니, 정도 들었으리라.

숨길 수 없이 삐져나오는 감정이라는 끄나풀.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겠지, 공부는 무슨.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가시나들.

봄이 확실하다.

밤을 태워 가며 보았던 가우스 이야기를 풀어 먹으려다 도로 구겨 넣는다.

눈알이 돌아간 요 녀석들에겐 백약이 무효다.    

 

보드게임반.

귀에서 피 날 것 같다.

눈치 게임으로 바닥에 놓인 숫자보다 큰 수를 내면 가져오면 된다.

제일 큰 수가 같으면, 다음으로 큰 사람 차지.

음수는 되도록 가져오지 않아야 하니 작은 수를 내야 한다.

손에 든 카드가 한정되어 있으니 조절해야 한다.

생각보다 스릴 있다.

매번 터지는 환호와 비명.

아무리 종류가 바뀌어도 이기는 녀석이 또 이긴다.

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보다 천배는 낫다.

이거 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꼭 하도록 해야 한다.

진이 다 빠져 교실로 돌아가는 녀석들, 목도 안 쉬는지.    

  

출근부, 활동일지, 봉사 내용을 스캔한다.

안전지킴이 수당 지출 품의를 올린다.

하루 2시간 40분 교통 봉사나 학교 안내, 하교 지도를 하면 끝.

일당은 18,000원, 한 달에 기껏해야 360,000원.

할 일 없이 우둑하니 하늘만 쳐다보느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돈이야 쥐꼬리만 하지만 하시겠다는 어른들은 많다.

부장님 확인 도장이 찍히지 않아 내일 다시 스캔해야 한다.

순서는 잘 적어 놓았으니, 걱정은 덜 된다.

컴퓨터라는 놈은 한 과정만 틀려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 장담은 못 한다.

특히 용량을 줄이는 툴을 이용하는 것이 좀 찜찜하다.     


사칙연산이 안 되는 녀석 두 명을 불러놓고, 하고 싶은 의욕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한 놈은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리는데, 한 놈은 맘이 없단다.

고놈이 더 문제인데.

받아야 할 놈은 안 받고, 안 받아도 되는 놈을 더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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