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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교무회의

2024.05.27. 월

     

“안녕, 시윤아!”

오던 발걸음이 순간 멈춘다.

환하게 웃음꽃이 핀다.

점잖은 공자의 후손, 공시윤.

한마디도 그냥 흘리지 않고 내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질문을 하면 바로 손을 드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떠들면 왼쪽 눈썹을 살짝 올려 뜨며 몰래 혼자 불만을 표시하던 아이.

아마 내가 제 이름을 모르겠거니 생각했나 보다.

오늘 아침 그 아이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가 마음속에 심어진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람 끝이 제법 선들거린다.

느티나무 꽃가루인가?

가늘게 사선으로 날리는 것은.

아침에 먹은 약 기운 탓인지 기침은 뚝했다.

기침은 왜 자려고 누우면 터지는지.


여학생 둘이 앞머리 때문에 실랑이다.

맘에 안 든다는 치와 괜찮다는 아이.

아들이 처음 미장원에 갔을 때, 구레나룻을 손으로 가리고 자르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머리와 구레나룻이 요즘 아이들의 자존심인가?

아침 시간을 거의 그쪽에 쓰는 것 같다.

싹 다 밀어버리고 싶다.     


그렇게 예고를 하고 미리 준비하라고 일렀건만.

‘나의 일생 그리기’ 수행평가는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몇 년을 살지를 정하고, 시기별로 중요한 사건 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최소한 다섯 구간으로 나누어라.

그것의 길이들을 분수로 나타내서 일차방정식을 만들고 해를 구하려면 구간을 적절하게 정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녀석들은 복잡해진 숫자 때문에 해를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부모님께 답지가 전달되니 정성스럽게, 앞으로의 계획과 지나온 삶 중에 정말 중요했던 사건을 기록하여야 한다고 했건만.

아무래도 집에 보내기는 어렵겠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무회의.

인사말을 하란다.

“먼 남쪽 나라에서 길 설고 낯선 저를 잘 돌봐주어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직접 만나고 싶은 생각에 찾은 학교입니다. 좋은 선생님들과 명품 학생들과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고 갑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타는 배우들이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빼먹었다고 아쉬워하던데, 내가 꼭 그 모양이다.

같은 실을 쓰는 선생님께 특별히 고맙다는 말은 했어야 했는데.

교감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들이 이어진다.

지필평가의 늪, 잘못 출제되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수행평가도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았다고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어렵게 마련한 휴게실이니 많이 사용해 달라.

출퇴근 시간 엄수와 조퇴는 상대적 박탈감이 없도록 사용하라.

아이들만 밥을 먹는 일이 없도록 급식지도를 잘해주시라.

학생 이동 시 교실이 문단속, 소등, 냉방기 끄기 등 담당 학생에게 교육을 잘 시켜달라.

끝도 없는 당부의 말씀이다.

난 이럴 수밖에 없는 교감 선생님과 들어야만 하는 선생님의 몫을 다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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