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이야기

by 분홍신

율동 공원을 걷다 보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걸음을 맞춘다. 내 옆에 있는 강아지에게 애틋한 눈길을 주면서 그들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친정엄마 죽었을 때는 눈물도 안 나왔는데 개를 안고 광주 화장장까지 가는 내내 서럽게 울었다는 아주머니. 오랫동안 개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삼겹살 구워 먹고 그릴에 남은 기름을 닦아낸 키친 페이퍼를 한쪽에 모아놨는데 식구들 외출한 사이 그것을 다 먹어치운 강아지 이야기도 들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는 개를 데리고 수의사한테 갔더니 위가 휴지로 꽉 차있어 150만 원 주고 수술했다면서 시어머니 병원비 내라면 아까웠을 텐데 개 수술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아기 유모차보다 개 유모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기사도 읽었다. 누군가에게는 혈육만큼 귀하고 누군가에게는 맘껏 베풀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 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가 호사를 누리며 사는 세상이다. 16년 동안 늘 함께 했고 분명 가족의 일원이긴 했으나 선글라스나 모자, 신발 같은 것은 신어본 적도 없이 온전히 개대접을 받으며 살다간 나의 개가 생각난다.


이웃에 입양되었으나 바로 파양되어 개 주인을 곤란하게 했던 시추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으로 왔다. 네 마리 새끼 중에 제일 먼저 나온 놈으로 충청도식으로 말하자면 <문열이>, 표준말로는 <무녀리>라고 한다. 처음 태의 문을 열고 나오는 새끼는 몸집이 작아야 하는데, 다른 새끼들에 비해 비실비실하다는 말대로 2프로 부족한 개였다. 결정적인 장애는 짖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택배기사든 우체부든 현관에 인기척이 나면 짖기는 고사하고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를 치니 개 맞나 싶기도 했다. 잠깐 현관문이라도 열어놓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개 찾느라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잃어버리면 말지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그 개와 종종 한 침대를 쓰던 딸년이 해외에 나가 있으면서 식구들 안부는 안 물어도 개새끼 안부는 꼭 챙기는 바람에 후환이 두려워 찾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엄마의 매운 손으로 때리지 말라느니, 잃어버리지 않게 꼭 줄 묶고 다니라느니. 보일러 공사를 하느라 현관문을 열어 놓은 사이 튀어나간 개를 찾아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밤 9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사례금 붙여 개 찾는다는 방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박박 현관문 긁는 소리가 났다. 설마 이 밤중에 개가 제 집을 찾아올 수 있나 가슴 두근거리며 문을 여니 먼지투성이 털 뭉치가 쏜살같이 뛰어들어왔고 나의 엄청난 환호성에 옆집, 아랫집 아줌마까지 달려와 개의 귀환을 기뻐해 주었다.


전에 오랫동안 키우던 요크셔테리어는 늙은 데다가 영악해서 밥 챙겨주는 내가 들어오면 누운 채 꼬리만 좌우로 흔들어 아는 척을 했고 중학생인 딸이 들어오면 본 척도 안 했다. 딸이 말하길 자신을 개무시하는 저런 개 말고 사람이 오면 무조건 좋아하는 개를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시추 요 녀석이 바로 그런 개였다. 누가 오든 그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고 아이들이 새우깡을 먹을 때는 녀석도 바삭거리며 같이 먹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비, 바람, 천둥이었는데 천둥소리에 놀라 벌벌 떠는 걸 보면 가여워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나간 사이에 비라도 오면 가족 단톡방에 불이 나고 누구든 빨리 집에 들어가서 개 보라고 서로를 다그쳤다.


"멍멍이 왜 안 데리고 나왔대요?"


녀석이 떠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10년 넘게 동네 어디를 가든 개를 데리고 다녔으니 이웃들한테는 나와 개가 한 세트로 보였나 보다. 개 볼일을 위해 하루에 세 번은 무조건 산책했다. 공원을 가든 뒷산을 올라가든 항상 나의 동반자였고 동네 슈퍼와 은행도 함께 갔다. 어느 날 슈퍼에 갔다 왔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뭘까? 삼십 분쯤 지나서야 개를 슈퍼 건물 난관 위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달려가 보니 녀석이 난간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고 슈퍼를 나오던 사람들이 내게 눈총을 줬다. 문제는 몇 달 후에 또 깜빡했다는 것이다. 장을 보고 슈퍼를 나오면서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자신을 까맣게 잊고 가는 엄마를 본 멍멍이는 위기를 느끼자마자 생전 안 하던 짓, 즉 짖기를 한 것이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녀석의 짖는 소리이다.


짖을 줄도 모르고 약간 모자라긴 했지만 녀석은 짧은 몸통에 긴 다리를 가진 S자형 몸매를 타고났다. 반면에 옆집 개는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했는데 얼굴만 시추일 뿐, 짧은 다리에 긴 몸통, 그리고 온갖 병을 달고 살았다. 알레르기가 있어 사료도 유기농만 먹어야 했다. 집에서 만든 수제 간식과 예쁜 옷들, 오리 털 파카, 울 망토, 스커트에 은목걸이 ... 그 개가 안 먹는 비싼 간식은 우리 집 냉장고로, 그 개가 못 입는 옷은 우리 집 창고로 옮겨졌다. 값싼 사료와 저질 개껌, 비스킷만으로도 행복했던 녀석은 이따금 냉장고에서 나오는 분에 넘치는 간식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타고난 몸매를 가진 우리 개는 무감각하고 인색한 주인을 만나 산골 촌놈 꼴이 났고, 형편없는 몸매를 가진 옆집 개는 뛰어난 센스와 넘치는 사랑을 가진 주인을 만나 부잣집 딸처럼 변모했다. 어쩌랴! 옆집 개는 걷기도 싫어하고 나가는 걸 무서워한다고 바깥 외출이 거의 없었고, 우리 개는 집에서는 절대 볼일 안 본다고 허구한 날 밖으로 데리고 다녔으니 후회는 없다. 다시 키워도 똑같이 개처럼 키울 것이다.


평소처럼 개는 개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불곡산을 올라 산 중턱쯤 와서 보니 녀석이 안 보였다. 한눈팔지 말고 빨리 오라고 소리 소리 지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저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지 13년 되는 해였다. 바로 두 팔로 안고 내려왔고 등산은 그게 끝이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었다. 나의 개도 몇 년 동안 똑같은 과정을 거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사람은 사람답게, 개는 개답게 살다가 가는 거라고 녀석에 대한 나의 매정함을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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