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는 뭘까? 어처구니없지만 결혼 전에 연애 한번 못 해봤다는 것이다. 등신도 이런 등신이 없다. 결혼 전에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다양한 이성과 사귀어 보는 것. 그런 기회는커녕 생각조차 안 하고 젊음을 보낸 멍청이라니. 물론 짝사랑 비슷한 것이 있었고 드물지만 나에게 추근대는 정신 나간 녀석들도 있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네 명의 오빠들과 씨름하며 거칠게 자라 남자를 우습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청춘 시절 내내 무엇을 했느냐고? 유유상종, 동성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출근하는 게 싫어서 밤마다 내일 아침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나 하면서 보냈다. 그러다가 회사 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집에 있는 것도 지루해질 무렵 오빠가 군대 동기를 소개해 줘서 썩 내키진 않지만 딱히 흠잡을 데도 없고, 나도 잘난 것도 없어 결혼의 문턱을 넘었다. 집 근처 복지관 문화센터에서 한동안 스포츠댄스를 배웠는데 파트너가 된 아저씨들과 춤을 추려면 짜증이 났고 그때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 연애할 수 있는 DNA 자체가 없이 태어났나 보다하고.
그런 내게 사랑이 왔다. 볼 때마다 가슴 떨리고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빨리 내일이 오기를, 바라만 봐도 애가 타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예정일이 닷새나 지났는데도 기미가 안 보이던 딸이 전날 밤에 진통이 시작되어 입원했다고 연락이 왔다. 오후 1시쯤 분만 예정이라고 해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아침도 안 먹고 목욕탕부터 갔다. 당시는 코로나 시국이라 병원에도 보호자 외에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 집에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집에 가서 아침 든든히 먹고 새 생명을 기다려야지 하면서 목욕을 끝내고 락커문을 열었는데 사위가 보낸 카톡이 와 있었다. 태아의 위치가 잘못되어 예정에 없던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의사가 영차 하면서 3킬로가 채 안 되는 아기를 뱃속에서 들어냈고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이 왔다. 딸의 작은 뱃속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길쭉한 팔다리를 버둥대며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 사진을 보면서 첫 번째 든 생각은 배가 고파도 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성스러운 순간에 밥이라니. 밥은 지극히 속된, 속세의 일이라 정 배고프면 빵을 먹어야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일상과는 다른 성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이 강렬해서 그날은 다른 날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 작은 천사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 아기를 볼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얼쑤! 뒤집기, 꼬물꼬물 기다가 어어! 일어나 앉기, 침대 난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서기, 끊임없는 노력 끝에 마침내 그날이 왔다. 인간이 달에 한 발자국 남긴 것 못지않게 감격스러운 아가의 첫 걸음마, 갓난아이가 자라서 직립보행 인간이 되는 지난한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순간순간이 기쁨이고 감격이었다.
재택근무하는 딸을 위해 아기 보기를 자청한 나는 매일 딸 집으로 출근을 했고 포대기부터 샀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기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쩔쩔매는 걸 보다 못해 내가 둘러업고 나가 동네 한 바퀴 돌면 금세 잠이 들었다. 육아 지침이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에 사는 딸은 아이 잠버릇 나빠진다고 업어재우지 말라고 싫은 내색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포대기에 가뿐하게 업고 다녔는데 보는 사람마다 아기 업은 거 오랜만에 본다고 반가워했고 어떤 이는 포대기 업은 거 처음 봤다고 했다. 갓 지어낸 쌀밥을 호호 불어 이도 안난 아가의 입속에 제 어미 몰래 한 수저 넣어주면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돌도 안 지난 것을 그네 태우다가 아기가 그네 줄 잡은 손을 놓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져 얼굴과 입안이 모래투성이가 되어 제 어미한테 욕먹을까 봐 관리실에 가서 몰래 씻기고 들어간 적도 있다. 놀이터 모래밭에 앉혀 놓으면 주먹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제 옆으로 오라고 할미를 불렀다. 요거트통에 모래를 꾹꾹 채워 뒤집고 막대기 몇 개 꽂아 주면 호오 ~ 불면서 생일 축하 놀이를 했다. 일주일 내내 변을 안 봐서 가족 모두의 관심사가 아기가 언제 똥 쌀 것인가에 집중되는 일도 흔한 일상이 되었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허겁지겁 여유가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거기에 전셋집 탈출, 내 집 마련이라는 힘겨운 지상과제를 가슴에 품고 있었으니 날마다가 전쟁이었고 사랑 같은 거에 빠질 여력이 없었다.
이상한 건 요즘 젊은이들도 똑같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삶의 목표를 갖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아이들이 아기를 낳는 순간부터 육아라는 개미지옥에 빠지고 모든 관심사는 오롯이 아이의 미래설계로 바뀐다. 옛날 아버지들은 밖에 나가 돈만 벌어오면 되었는데 요즘 아빠들은 육아에 설거지까지 해야 된다고 아들 가진 엄마들 속이 부글부글한다. 딸 가진 엄마들은 아들과 똑같이 키웠는데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한다. 앞날이 창창한데 그들의 삶보다는 아이의 삶에 비중을 두고 젊디젊은 부부가 서로에게 보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걸 보면 안쓰럽다. 결혼할 때까지 부족함 없이 보호받고 영원히 어른이 될 것 같지 않게 자란 남자애와 여자애가 만나서 감출 것 하나 없이 드러난 SNS 세상에서 상상도 못한 부모 노릇을 하려니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왜 인생이라는 사이클은 변하지 않는 걸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함께 조건 없는 헌신과 희생이 되풀이되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과정은 AI 시대가 와도 안 바뀔 모양이다. 내 자식이 아닌 손주이기에 그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세 돌을 넘긴 아기가 지난주에 왔다. 짭조름하게 튀긴 갈치 살을 발라먹다가 갑자기 고개를 까딱하면서 할머니 고맙습니다 한다. 맛있는 거 먹으면 하는 소리란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지 엄마한테 할머니 데리고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단다. 부정맥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내 인생 후반기에 온 선물 같은 내 사랑, 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