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오래된 모임들, 20년, 30년 된 각기 성격이 다른 모임이 몇 개 있다. 학교 동기동창들부터 신도시에 이사 와서 만난 이웃 아지매들, 아이들 학교 엄마 모임까지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데 연말이면 꼭 한 해가 가기 전에 한 번은 만나고 가야지 하면서 12월이면 갑자기 분주해진다.
책에서 보니 어떤 사람은 매년 마지막 날 전화번호를 꺼내놓고 총정리를 한다고 한다. 내년에도 계속 만날 것인가 아니면 정리할 것인가. 이해관계라기보다 인간적으로 정이 떨어졌을 때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알게 모르게 내게 상처를 준 '말'을 한 사람, 그러면서 난 또 올해 누군가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지 않았나 떨리는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모임이 있을 때 자신은 절대 먼저 자리를 뜨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다섯 명이 만나는 대학 동창 모임에서 한 명이 일이 있어 먼저 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화제가 친구의 험담으로 이어졌다. 그 친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모르고 있던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하고 수긍도 했지만 내리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를 가차 없이 험담하는 그 상황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험담은 사회적 본능이고 내가 남들의 험담 대상이 되지 않는 건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서 깊으면서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하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도 뒷담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살다 보면 그러려니 내버려두면 되는데 한때는 나도 그런 일로 꽤나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시골 중학교 때 만났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언제부터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졸업 후 각자 다른 도시에 있는 고교로 진학을 해서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방학이 되면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애인들처럼 빨리 만나고 싶어 안달이었다. 친구가 다닌 학교는 숲에 둘러싸여 있어 유난히도 교정이 아름다웠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아무도 없는 연못가에서 쓴 편지, 혹은 교정을 가득 채운 병들어 노래진 낙엽을 보며 쓴 편지는 시보다도 아름다워서, 읽고 또 읽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끌이고 다녔다. 그녀는 글도 잘 썼지만 얼굴도 예뻤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 같다.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친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내가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살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까지 결혼을 안 했던 친구는 벼르고 별러 날을 잡아 아기의 예쁜 옷과 커다란 세제 한 통을 사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자신이 최근에 겪은 힘든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내가 알 수도 없었고 꼭 말해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친구는 자신의 속을 보여주는 게 나의 우정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친구 노릇하기도 쉽지 않구나. 너는 진짜 내 친구구나.
세월이 흘러 친구도 나도 애 둘을 키우는 40대가 되었을 때 우리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그것도 같은 지역에 살게 되었다. 그동안은 각자 사는 게 바쁘고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의 만남이 뜸했지만 가까이 살게 되면서 바야흐로 우리의 오랜 우정이 무르익을 시기가 왔을 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내 친구는 우리 둘 다 잘 아는 시골 친구네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그 친구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다가 내 얘기가 나왔는데 누구한테 들었다면서 내가 들어도 황당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소문의 진위를 떠나 나의 사랑하는 친구는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내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남의 험담을 들었을 때 하듯이 무심히 그랬구나아. 난 몰랐는데 이런 식으로 대처를 한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나의 우정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친구의 험담을 들었을 때 자신의 무심한 처신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는지 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죽을 때까지 입다물고 있으면 내가 모를 일을 스스로 밝혀 오랫동안 쌓아왔던 우리 우정의 산통을 깨고 말았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얼음장이 갈라지듯 쨍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넌 나의 모든 것을 알잖아.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도! 넌 그때 나를 변호했어야 했어! 그런 일이 있었어? 이렇게 맞장구칠 게 아니라 분명하게 나를 설명해 줬어야지.
그러게 말이야. 그땐 무심코 대꾸했는데 두고두고 미안하더라 어쩌고저쩌고...
그것으로 우리의 오랜 우정은 끝이 났다. 어떤 황당한 소문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친구가 터무니없는 소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지 않고 맞장구쳤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너는 무조건 나를 지지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후로도 변함없는 나의 믿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과연 그게 그렇게까지 용서 못 할 대단한 일이었던가 하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가 십 년씩이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나에게 고해성사까지 할 정도였다면, 한 번쯤 친구의 마음도 헤아려 봤어야 되지 않나? 분명한 건 친구의 험담을 들었을 때는 단호하게 처신하는 것이 지금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렵게 사과를 했는데도 그때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지금은 그까짓 거 별일 아닌데, 그러려니 내버려두면 될 것을 내가 단칼에 자른 건가? 하는 뜻밖의 생각이 한편으로 올라와서 나를 당황하게 한다. 어쩌면 혼자 착각했던 게 아닐까? 나 혼자 좋아하면서, 친구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당연히 나를 좋아할거라고? 이유 여하를 떠나 나 좋다는 사람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관계란 철없던 시절에도 나이가 든 지금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글쎄? 이게 맞는 말일까? 아직도 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