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려놓은 버스가 출발하자 신작로에는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먼지가 사라지자 나는 갑자기 초록의 바다로 침몰했다. 온통 초록! 초록! 초록! 길가의 아카시아 나무, 그 아래 도랑 속의 무성한 풀들, 끝없이 펼쳐진 사래 긴 밭은 나를 덮칠 듯이 초록 물결을 쳤고, 우리 집을 둘러싼 작은 뒷동산은 녹음이 진하다 못해 검게 보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눈부신 초록뿐이라 처음에는 당황했다. 여기가 천국인가, 불과 넉 달 전에 내가 떠났던 그 동네 맞나? 인천은 여전히 회색도시인데.... 그렇구나. 난 이런 곳에서 살았어.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 생전 처음 고향을 떠나 고등학교 입학 후 아마도 연휴를 맞아 잠깐 집에 돌아왔던 순간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곳, 자갈투성이 신작로에 하루에 대여섯 번 버스가 다니던 시골에서 자란 나는 인천으로 고등학교 시험 보러 갈 때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장항선을 타고 영등포역에 내려 경인선 기차로 바꿔타고 도착한 인천, 그때는 몰랐다. 내가 녹색의 천국에서 회색빛 도시로 이식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천제철에 취업하게 된 오빠를 따라 나는 인천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던 자취방은 스물네 시간 쉬지 않고 끓어넘치던 제철회사의 쇳물 용광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달동네 언덕이었다.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회색 공장지대와 끝없이 늘어선 콘크리트 굴뚝, 그 너머 연안 부두의 잿빛 하늘뿐이었다. 언덕 너머는 쓰레기가 산을 이루었고 더덕더덕 붙은 판잣집들은 거의 빈민촌이라고 할 만했다.
시골에서 처음 올라와 도시 물정을 모르던 내가 오빠가 아끼는 청바지를 빨아서 밖에 널었다가 누군가 걷어갔다는 것도, 새로 산 여름 샌들을 앞집 아줌마가 외출하면서 신고 나갔다가 슬며시 갖다 놓았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항구도시인 그곳 시장에는 내가 처음 본 것이 있었는데 다들 오뎅 혹은 덴뿌라라고 부르는 어묵이었다. 기름 범벅으로 산처럼 쌓인 그 물건을 보면서 저것도 먹는 건가 놀라기도 했다. 그곳은 가로수조차 먼지에 덮여 회색이었고 시내버스는 비나 와야 씻기는 먼지투성이 차였다.
1년 후 우리는 달동네를 떠나 내가 다니던 학교 앞으로 이사했고 나는 서서히 녹색지대를 잊고 회색빛 도시에 익숙해졌다. 한밤중 옆집과 맞닿은 벽 사이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정겨움을 느꼈고 친구들과 도시 외곽을 쏘다니는 재미에 빠졌다. 버스 타고 몇 정거장만 나가면 잿빛 도시 인천이 아니라 시골이었다. 초록 언덕을 이룬 푸른 지대의 딸기밭, 그곳에서 소녀들은 곤색 플레어스커트와 흰색 블라우스에 딸기즙과 풀물을 들이며 깔깔댔고 배나무 밭 과수원에 몰려가서 주인 안 볼 때 배따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방학에 고향 집에 가도 처음 느꼈던 녹색 천국의 충격은 사라졌고 친구들이 있는 곳, 영화관과 헌책방 골목이 있는 회색으로 넘쳐나지만 무언가 살아있는 도시가 그리워 빨리 돌아왔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부모님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와서 다시는 초록 바다에 갈 일이 없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직장을 다니며 가끔 이상한 충동에 휩싸이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 밖으로 보이는 들쑥날쑥 보기 흉하게 가지치기한 가로수와 회색 빌딩들을 보면서 불현듯 어딘가로, 잿빛 거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뛰쳐나가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다른 곳으로 가서 숨을 쉬고 싶다는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결혼을 하고 시골 시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난 나는 난데없이 벽에 걸린 초록 액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온통 초록인 직사각형 액자를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그건 초록으로 가득 찬 들판을 보여주는 창문이었다. 거칠 것 없이 쑥쑥 자란 파란 모가 펼쳐진 논이 보이고 창문 밖 마당에는 새벽에 따다 놓은 야자 잎사귀만큼이나 커다란 담배 잎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당 옆에는 줄에 엮어 말리고 있는 연초록 담뱃잎으로 가득 찬 비닐하우스가 있고 곱게 빗질된 마을 흙길과 밭두렁, 논두렁이 온통 푸르름에 덮여있어 나는 과거의 초록 바다에 내가 다시 침몰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초록바다에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이유도 모른 채 이따금 숨 막혀 하던 나를 풀어준 초록 액자는 십여 년 전에 사라져버렸다.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이 이 동네로 이전하면서 남편의 고향은 수렁뜰 주촌이 아니라 내포 신도시로 이름이 바뀌었고 내가 사랑했던 초록 액자가 있던 집은 신도시 건설과 함께 거대한 트랙터 바퀴 아래 평평한 택지로 변했다. 원주민들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택지를 분양받아 주상복합 건물을 지었다. 아직도 빈 택지가 많이 남아있는데 구순의 시어머니는 그 빈땅에 농사를 짓고 계신다.
지난주에 고구마를 캐러 갔다. 상가 건물들이 서 있는 택지 중간에 누워있는 고구마밭, 지난여름의 무자비한 더위를 견디어 낸 질기고도 무성한 고구마줄기와 비닐을 걷어 냈다. 나일론 바지를 입고 밭두렁에 철퍼덕 주저앉아 땅속 깊이 호미를 들이대며 고구마를 캤다. 가을 햇살이 따가웠다. 그 푸르던 논밭과 초록으로 덮인 낮은 구릉지대, 마을을 둘러싼 야트막한 뒷산, 나를 숨죽이게 했던 녹색 천국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신도시 이주민 택지에 집들이 다 들어찬다면 이렇게 밭고랑에 주저앉아 흙과 씨름할 기회도 없겠지. 평생 흙만 파고 살아오신 우리 할매 할 일도 사라지고 어쩌면 그전에 먼 길 떠나실 수도 있겠지. 내가 사랑한 초록바다는 기억 속 저 밑바닥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