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미래

by 분홍신

테드 창의 소설 <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중에 외계인과 접하고 그들의 언어를 익히면서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에 견디기 힘든, 불행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 앞에 놓여진 삶을 그대로 선택한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자유가 있는 삶을 사느라 몸부림치는 우리들, 먼 미래는 고사하고 내일 일도 짐작 못하지만 분명하게 아는 미래가 한 가지 있다. 우리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 저자의 창작 노트에 나온 한 구절 "인내심을 가지도록. 제군의 미래는 제군을 잘 알고 있으며, 제군이 어떤 인간이든 간에 사랑해 주는 개처럼, 제군의 발치로 달려와 드러누울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죽음 아닐까?


시골에 혼자 계시는 올해 아흔두 살의 우리 시어머니의 일상은 이러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깐 바깥을 둘러본다. 농사철에는 해 뜨기 전에 밭에 나가지만 밭갈이 전인 요즘은 날씨는 어떤가, 텃밭에 마늘은 밤 새 얼마나 자랐나, 주변의 쓰레기도 줍고. 그리고 아침은 아직 멀었다. 혼자 먹으니 식욕도 없고 급할 것도 없고, 오전 10시가 다 되도록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데, 잠깐 잠이 들기도 한다. 채널은 오로지 KBS뿐, 귀가 절벽이라 아무리 크게 틀어놔도 웅웅대는 소리뿐이라 볼륨은 신경도 안 쓰고 화면만 본다. 뉴스도 보고, 아침마당도 보고, 황금 연못도 본다. 채널을 안 바꾸다 보니 뉴스나 시사프로가 많이 나와서 가끔 내게 대통령은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내려가 있을 때는 올레 TV를 통해,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고향민국 등등 주로 내가 살지 않는 어떤 지역의 풍경과 그곳의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을 본다. 귀는 안 들려도 화면만으로 내용을 다 짐작할 수 있기에 할매와 나는 이런 프로를 보면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할매는, 세상이 참 넓기도 허다. 아이구 저건 먹음직스럽기도 허구나. 아니면, 다 잘 사는 것 같아도 아주 못 사는 사람들도 많다 잉. 나는 곁에서 드문드문 장단을 맞춘다. 저 빨간 열매가 커피여유. 나무에서 따서 말리고 골라서 볶고... 커피가... 똑 콩 같이 생겼구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이웃 할머니가 마실을 오면 같이 KBS를 보며 대화를 한다. 잘 안 들리니 무슨 말을 해도 오래 이어질 수가 없고, 꼭 필요한 말은 서로에게 전달하기 위해 짧은 문장이 된다. 그래서 할매는 밭에서 일하는 게 제일 좋단다. 다른 생각 할 것도 없고, 안 들리는 귀로 집중할 필요도 없고 그저 밭고랑에 충실하면 되니 시간도 잘 가고 마음도 편한단다.


지금부터 25년 후, 딱 할매 나이 때가 될 2050년의 나는 어떨까? 아는 미래가 벌써 와서 나를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할매처럼 귀가 절벽이 되어 혼자만의 고요 속에 놓여있을 수도, 어쩌면 다행히도 눈은 덜 망가져 돋보기에 의지해 활자에 집중할 수 있으려나?

지난달에 김치냉장고를 바꿨다. 15년 전에 산 딤채가 아직도 쓸만하긴 했는데 갑자기 불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 새것으로 바꿔 드렸다. 가전 설치기사가 말하기를 자동으로 온도조절이 되어서 가끔은 냉장고에 불이 안 들어 올 때도 있는데 그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할매한테 그 얘길 하니, 아이고 얘야. 사실은 전기 나가서 고장 난 줄 알았는디 며칠 있다가 또 불이 들어왔더라. 그게 고장이 아니라 지가 알아서 그런 거였구나. 바꾸지 말걸 그랬다. 아니요. 너무 오래되고 속에 코팅도 벗겨져서 잘 바꿨어요. 나는 냉장고 레벨 표지 위에 25년 4월 10일이라고 매직으로 굵게 써놓았다. 새 냉장고는 별일이 없는 한 앞으로 또 15년을 버틸 것이다. 그때쯤이면 할매는 분명히 가셨을 테고, 더 이상 염색할 필요성을 못 느낄 나는 백발 할매가 되어 있을 것이다. 딤채를 처음 마련한 15년 전, 그때는 나도 쉰을 갓 넘겼고 할매는 지금의 나보다 더 늙었었다. 15년 후의 오늘을 짐작했거나 상상해 봤을까? 물론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삶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서 둥지를 떠났고, 우리는 진짜 늙은이가 되었고, 할매는 호호백발에, 할배는 적절한 시기에 가셨다. 출발선은 오래전에 지났고, 이제 중간 지점을 지나 우리 모두가 아는 미래로 가고 있다.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아직 책도 읽을 수 있고, 잠자기 전 바흐도 들을 수 있고, 의지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갑자기 나의 하루가 헛되이 낭비되거나 꾸역꾸역 그저 아는 미래를 향해 밀리듯 가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든다. 그런다 한들 뭐 어찌할까? 15년 전의 할매는 일흔이 넘은 그때까지도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해 뜨기 전, 이웃집 할매가 내가 제일 먼저 나왔나 하고 둘러보면 우리 할매는 벌써 밭 한고랑을 다 매고 난 뒤였다. 오로지 자식과 남편, 가족만을 위한 삶 끝에 이제야 한가로운 노년에 들어섰는데 귀도 멀고 허리도 시원찮고 무릎 연골은 결딴났고... 아는 미래는 저만큼 와 있다. 가족을 위해 살기도 했지만 짬짬이 여행도 가고 극장도 가고 가끔 인생을 낭비도 하면서 전반전을 보낸 나의 미래는 어떻게 올지 약간은 심란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사랑한 초록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