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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 때늦은 후회

by 분홍신

지난 설에 차례상을 차리는데 동서가 말했다.

우리도 제사 그만 지내지요. 형님?

응? 어머니 살아생전까지만 지내자고. 돌아가시면 그만해야지.

그러잖아도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님 생전까지만 지내자고 남편과 얘기를 했었는데 동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동서의 다음 말이 나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하였다.

여태까지 잘 얻어잡쉈으니 이제 그만 지내도 돼요.

아니 뭘 잘 얻어잡숴? 차린 게 뭐 있다고.

이만하면 잘 차린 거지요.

사실 차례를 안 지내도 될 기회는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생전에 동네 초상 때마다 지관일을 맡아 보시던 아버님께서 어느 해인가 묫자리고 풍수고 부질없다고 느끼셨는지 명절 차례상 하지말라고 하셨다. 손주인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되자 더 이상 집에서 제사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식차례로 제사를 통일했고 몇년후에는 명절차례도 그만하라고 하셨다. 전통적인 관습에 대해 특별한 저항감을 못 느끼던 어리석은 나는 어른이 내린 그런 중요한 결정을 넙죽 받아들일 생각을 못 했다. 그때만 해도 명절에 차례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한참 앞서 가신 분의 선견지명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모이기 어려운 형제들 얼굴보기 위해서라도 명절을 지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계속 차례를 지내왔고 어머님이 백세까지 사신다면 십 년 가까이 또 지내게 될 모양이다. 큰 마음먹고 말을 꺼낸 동서를 위해서라도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이 둘 데리고 명절에 시골 내려가는 귀성전쟁이 힘들어지면서 시부모님께서 도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역 귀성을 하게 되었다. 나름 형식은 갖추고 싶어서 병풍과 옻칠한 제기 세트도 샀다. 제사 형식에 맞춘 최소한의 음식 준비였는데 그걸 잘 차렸다고 하니 실소가 나오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차리고 그게 힘들었다면 아버님이 차례상 차리지 말라고 했을 때 바로 좋다고 했을 텐데, 식구들 잘 먹고 좋지 뭐, 이 정도 수준의 상차림이라 큰 부담이 없었던 듯하다. 또한 내가 남편 조상님들 얼굴을 봤나, 누군지 알기를 하나 단순히 형식적인 행사였을 뿐이다. 그래서 서서히 나도 지극정성도 안 들어간,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형식적으로 차리는 제사 계속할 필요가 있나 회의가 드는 중이었다. 그렇더라도 명절차례가 평생습관이 된 어머니가 계신데 동서가 말했다고 냉큼 그러자고 할 수는 없었다.

명절 때마다 오빠는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놀다 들어오고, 아빠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낮잠이나 자고, 애꿎은 저만 붙잡아 놓고, 송편 만들라느니 전 만드는 거 거들라느니 하면서 할머니, 작은 엄마들과 여자들만 일하는 문화에 치를 떨던 딸은 내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엄마가 제일 못된 시어미라니까. 작은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면 바로 그만 두자고 해야지. 요새 누가 제사를 지내?

그런 딸의 시댁 명절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그 애들은 결혼 전부터 외국에서 일했고 한국에 온다 한들 휴가 때나 왔으니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시집의 제사문화를 맛볼 기회가 없었고 일찍이 객지로 나온 사위야말로 제사 같은데 관심도 없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남편과 나는 둘 다 평범한 충청도 사람으로 우리가 아는 차례라든가 제사상은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굳이 간소화라는 말도 필요 없고 집안 형편껏 차려서 몇 번 절만 하면 되었다. 딸의 시댁은 부산이었고 본가는 ㅇㅇ에 있었다. 올 설에 딸네는 처음으로 구정이 낀 일주일을 시가에서 보냈는데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본가에 가게 되었다. 가뜩이나 명절이라든가 제사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딸에게 시댁의 설 차례는 거의 쇼킹 수준이었던가 보다. 놀란 딸이 시집 식구들 몰래 찍어서 내게 보낸 차례상은 흉내만 낸 나의 차례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굵고 두툼한 건조 생선이 접시 가득이고 먹음직스러운 온갖 전도 수북수북, 어마어마하게 큰 삶은 문어, 족편인지 뭔지 엄청난 덩어리, 시루떡도 켜켜로 포개져 있고, 온갖 과일에, 아마도 그 애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상다리 부러지는 차례상이었을 것이다. 상은 아침 일찍부터 차려놨는데 근처에 사는 막내 작은아버지가 도착을 안 해서 다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중에 막내 작은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지는예..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예, 아아들하고 애아부지가 아직 안 나왔심더...

설 전날에 칠십이 다 되는 늙은 며느리들 - 큰어머니와 딸 시어머니가 차례상 준비를 하는데 막내 작은 어머니는 안 나타났다고 한다. 기다리다 못한 우리 딸 시어머니가 막내 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뭐 하고 있노? 아 예. 지금 막 점심 먹고 쉬고 있심더. 쉴 새가 어디 있노? 지금.

그럼에도 순하디 순한 막내 작은어머니는 끝내 안 왔고 설날 아침 막냇동생을 기다리다 못한 우리 딸의 시아버지가 큰형에게 그럼 우리끼리 먼저 세배합시더. 하더니 늙은 형제 부부가 마주 서서 맞절을 했다. 오전 열시가 다 되어 막내 작은아버지 가족이 도착했다. 그때부터 끝없는 절이 시작되었다. 차례상 앞에서 단체로 절을 한 다음 큰아들부터 둘째 셋째 아들 따로따로 절하고 술잔을 올리며, 며느리 셋 단체로, 그다음에 손자 둘이 따로 하고 ... 제사 놀이 구경하던 우리 아기도 절 한번 해보겠다고 참가하고 마지막에 단체로 또 절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식사하시라고 1분 이상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일분 동안 밥을 어떻게 다 먹느냐고 딸은 한 소리 했다.

그리고 나서는 식사를 했는데 남자상 여자상 따로 차려놓은 걸 본 우리 사위가 나도 여자상에서 먹겠다고 했다. 요새 드라마 <폭삭 속았쑤다>에 관식이가 뒤돌아앉아서 애순이랑 밥을 먹었다나 했다더니.

상을 물리고 딸의 시아버지가 막냇동생에게 물었다.

니는 머하느라 이리 늦게 오노. 한 번도 아이고. 니때매 아부지 어무니 식사 늦으신다. 매번.

아, 예에, 뭐 고얭이 밥 주고 오느라 늦었어예.

그리고 막내 가족은 제일 먼저 떠났다. 사위의 해석에 의하면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막내 작은 아버지는 세뱃돈도 제일 많이 주시고 지역 전통문화행사에도 열심이라고. 아마도 작은 어머니도 설 준비하는데 못 가게 하고 자신들도 일부러 늦게 오는 것 같다고. 7남매의 막내가 나이 많은 형님들에게 제사 그만 지내자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니 나름 의사 표현을 하는 거라고. 삼촌이 똑똑하다는 사위의 말에 우리 딸도 한 술 거들었다. 이제 겨울에는 추워서 안 들어올 거야. 특히 명절에는.

계속 제사를 지내야할까? 아버님이 차례상 차릴 거 없다고 했을 때 잘난척하지 말고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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