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읽은 기사 한 토막. 현대의 실제 빈곤계층은 누구냐? 자신의 생체나이 그대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중산층도 못되지만 밥 걱정은 안 하고 사니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까지 생각은 안 했는데 그때 깨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빈곤층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겠구나. 화장도 안 하지, 치장에 관심도 없지. 친구들과 만나면 그들은 늘 말했다. 화장 좀 하고 다녀!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가 아직도 이쁜 줄 아나?
50대 60대를 지나면서 예상했던 대로 나는 내 생체나이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빈곤계층이 되었다. 나이와 함께 얼굴 곳곳에 주름이 깊어가는데 특히나 눈 밑, 양볼에 세로로 파인 인디언 주름은 거울을 볼 때마다 보기 싫어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성형은 생각도 못 해봤다. 이미 깊게 팬 주름을 어쩌겠어. 그러다가 가까운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칼 한번 대보자 후회 없이, 하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동네 성형외과에 가서 드디어 나도 하안검 수술을 했다. 결과는? 내가 말하기 전에는 내 눈 밑 아래 늘어진 볼살 0.5센티만큼이나 잘라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보기 흉하던 주름이 어디 갔지 하면서 스스로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니 이 맛을 한 번 본 사람들이면 안 하고 배길 수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맛을 너무 늦게 본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안 올 것이다.
지난 4월에 미국에 이민 간지 30년 된 여고 동창이 두 달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친구는 오자마자 쌍꺼풀과 하안검 수술을 할 거라고, 실밥 다 뽑고 한 달 후에 만나자고 했다. 나도 하안검 했는데 너 어디서 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교포사회에서 오죽 잘 알아보고 왔으랴 하고 조용히 있었다. 예상대로 친구는 강남 유명 성형외과에 가서 했는데 하안검 수술이 아니라 <눈 밑 지방재배치>를 했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친구와 나는 눈 밑 지방재배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눈 밑에 피부 좀 떼어내지 않았어? 내가 묻자 그녀는 자신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데 의사 말에 의하면 주사로 눈 밑에 지방을 재배치했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빌딩 전체가 성형외과인데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젊은이들뿐이고 늙은이는 자신 하나뿐이어서 창피해 화장실 귀퉁이에 숨어 있다시피 하면서 간신히 하고 왔단다. 우리는 서로의 손자 손녀 사진을 보여주면서 늙어감을 확인하고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인 성형의 진실을 파헤쳤다. 그리고 알았다. 여태까지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서울에 있는 친구도, 미국에서 온 친구도 성형과는 전혀 관계없는 줄 알았는데 이들도 뭔가 조금씩 한 게 있었다. 눈썹 밑에 아이라인도 새겨 넣었고, 입술 선도 선명하게 문신했고... 하긴 내게 제발 보톡스로 얼굴 주름 좀 쫙 피라고, 볼 때마다 성화를 대던 친한 언니도 나이 일흔이 넘었음에도 얼굴에 보톡스, 필러 다 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나와 가까이 있는 이들, 아니면 나를 좋아하는 이들이 나에게 얼굴 주름 좀 어떻게 해 보라고 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이 나라는 왜 내 맘대로 늙지도 못하게 하느냐고. 생각해 보니 그건 만사 귀찮다는 우물 안 개구리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말은 안 하지만 모두들 살금살금, 살짝살짝 알게 모르게 밀어 넣고 늘이고 떼어내는데. 그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인데 그게 싫으면 바위 밑에 들어가 살던가.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이제 상하안검 수술은 거의 일반화된 듯 하다. 나이가 들면 눈꺼풀이 쳐져서 시야도 좁아지고, 짓무르고, 눈 아래 지방살이 뭉쳐 보기 흉하게 된다. 그러니 깔끔하게 젊게 보이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마다할 수가 있을까? 다만 눈을 둘러싼 수술이라 자칫 시력이나 시야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함부로 하면 큰일이다. 내가 하안검 수술한 것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것은 다행이지만, 또 하나 남들이 모르는 게 있다. 수술한 지 넉 달이나 지난 지금도 종종 눈곱이 낀 듯, 눈이 침침하기도 하고 찝찝할 때가 있다. 안과에서 물어보니 하안검 수술을 하면, 눈가 주름이 줄어들어 눈이 건조해져 눈곱이 낄 수 있다고 했다. 성형외과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는데 가끔 생각을 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것을 했나.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도 내 얼굴에 한줄 주름이 사라졌다는 것을 몰라보니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 말고 남의 얼굴에 관심이 없다. 나를 위해 내 얼굴 보기 좋으라고 했으면서도 더는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주름이 있건 말건, 편하게 뜨고 감던 눈이 인위적인 손질에 의해 또다시 침침하거나 찝찝해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성형외과 간호사가 말했듯이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만 또 오고야 만다고 하니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럴 용기를 내기엔 나이가 많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미용 성형이 대단한 일도 아닌 흔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인데 그게 싫다면 바위 밑에 들어가 살던가 하라니, 그럴 용기도 없고 이래저래 생체나이 그대로 늙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