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의 안방 동선을 다 알고 있어요.

by 분홍신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작은 손절구에 마늘을 콩콩 빻고 있는데 딩동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야심한 시각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못 하고 문을 열었더니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무얼 하시는지 계속 쿵쿵 소리가 나서 올라왔다고 했다. 아뿔싸! 시간을 보니 밤 열한시가 가까웠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죄송하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사과했다.

며칠 후 누군가 찾아오긴 이른 시간인데 벨이 울렸다.

"저어, 아래층 사는데요."

젊은 여자가 머뭇거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기요, 밤새 우리 아기가 잠을 못 잤어요. 위층 소음 때문에요."

"소음? 우리 두 늙은이밖에 안 사는데요."

"밤새 화장실 물 내리고, 저기, 저희가요, 두 분의 안방 동선을 다 알고 있어요."

뭘 안다고? 아이들이 독립해 집을 떠난 후 우리는 각방을 썼고, 안방에는 낮에 청소할 때 외에는 안 들어가는데. 잠시 멍하다가 남편이 대장내시경 검사 준비로 엊저녁 밤늦게까지 화장실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 아! 오늘 남편이 대장내시경검사를 하거든요. 어휴, 죄송해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그다음 주에는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래층 여자가 우리 집 거실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항의하러 왔는데 조심 좀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집은 애들도 없고 어른 둘 밖에 안 사는데 대체 무슨 소리냐고, 여기서 20년 넘게 살아도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다고 하면서 그 여자는 왜 직접 말하지 않고 그런 걸 관리실까지 가서 말하느냐고 화를 냈다.

잠시 후 여자가 선물이라면서 미국에서 사 온 꿀 한 병을 들고 왔다. 자기네 아기가 소음에 민감해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깬다고, 미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에 왔는데 모든 게 익숙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미제 꿀은 돌려보냈고, 남편과 나는 집에서는 생전 신어 본 적 없는 실내화를 신고 발걸음도 조심조심, 아래층 갓난아기 잠 깰까 봐 신경을 썼다. 남편 보고 안방 화장실은 낮에만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 후에 또 그 집 남편이 찾아와서 어젯밤 가구 옮겼느냐고, 밤에 왜 가구를 옮기느냐고 따질 때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한밤중에 뭔가 끌고 옮기는 소리, 나도 들었는데, 그건 우리 집 아니고 다른 집에서 난 소리였다고.

집에 손님이 오기로 한 날, 아침부터 청소기를 밀기 시작했다. 아래층 무서워서 조심했지만 안방 침대 밑이랑 내방 침대 밑을 밀 때는 침대 다리에 청소기가 부딪혀 살짝 소리가 났다. 내 집 청소하면서 이 정도 소음도 못 내나 태평하게 생각하며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자마자 벨이 울렸다. 아래층 남자였다. 지금 박스 같은 거 옮기지 않았느냐고, 우리 아기가 또 깼다고, 나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까부터 티브이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다. 분명 쿵쾅 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층간 소음 문제를 겪으면서 알았다. 한번 귀가 열리면 아무리 미세한 소음이라도 다 들린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예외라는 것, 온갖 병원균들이 사방에 득실거리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들이 초등학교 때 몇 년 살던 빌라에서 이사를 가면서 아래층 사람들이 속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했다. 개구쟁이들이 시도 때도 드나들면서 그 애들이 나가고 나면 거실에서 모래가 한 웅큼씩 나왔다. 애 키우는 젊은 엄마한테 말은 못하고 저 집은 언제 이사 가나 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위층에 아들만 둘 있는 집이 살았는데 그 집 부모가 집을 비우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난리가 났다. 쫓아 올라가 따져봤자 애들한테 뭘 어쩌랴. 그 집 엄마가 미안하다고 떡을 사갖고 왔는데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우리 애들도 그랬답니다'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지금은 직접 말하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바로 관리실로 신고하고 심하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는 세상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귀가 활짝 열려, 위층 소음이 다 들어와 참을 수가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다행히도 그들은 전세 기간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이사를 갔다. 내 집에 살면서도 늘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으니 '해방이다아!' 소리가 속에서 절로 나왔다. 갓난 아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듣자 하니 외동인 유치원생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학군이 더 좋다는 시범 단지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에헤라! 이렇게 좋을 수가. 학군 안 좋은 것도 도움이 되는구나. 너희들은 어디 가서 살아도 쉽지 않겠다. 그렇게 좋은 귀를 갖고 있으니. 돈 많이 벌어서 단독주택이나 절간으로 이사 가라고 빌어주었다.

적지 않은 세월, 우리 집의 아래층에 살던 분들이 생각났다. 나처럼 귀가 열리지 않은 무딘 사람들만 살았었을까? 어른 둘만 산다 해도 생각 없이 밤늦게 화장실도 쓰고 운동장 돌 듯 쿵쿵 걸어 다니기도 했을 텐데. 공동주택에 사는 마당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을 따뜻한 그 마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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