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명함은 여러 개, 이건 생존 본능이다
"이것은 멋진 도전기가 아니다.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기록이다."
1N년 차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내 책상 하나가 영원히 지켜질 거란 믿음은 없었다. 뉴스를 틀면 하루가 멀다 하고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고 서점 매대에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두려운 제목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나 나는 기획을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글로 정리하는 일. 한때는 이것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생성형AI가 내놓는 기획안이 내 것보다 그럴싸해 보일 때 아차싶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 언제든 나의 밥벌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현실이 눈 앞에 도달했다.
"회사라는 간판을 떼고 나면, 나는 과연 혼자 힘으로 10원이라도 벌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하기 위해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벌였다. 이것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몸부림이자 환경이 바뀌면 동물들이 진화하듯 나도 내 생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본능적인 계산이었다.
나의 첫 번째 N잡은 과외였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소위 지식 판매였다. 퇴근 후와 주말을 반납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쏠쏠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내가 아프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수입은 0원이 된다. 노동 집약적인 방식만으로는 내 삶을 온전히 지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온라인 스토어였다.
'잠들지 않는 상점',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에 혹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글이었다. 디지털 세상의 경쟁자는 전 세계에 있었고 최저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니 내 영혼이 최저가가 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자동화로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차가운 디지털 세계 역시 AI가 가장 먼저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기로 했다.
AI가 침범할 수 없는 곳이 없을까.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곳은 없을까.
그래, 그곳은 오프라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무인 스터디카페와 독서실이었다.
'공간'을 파는 일. 온라인 스토어보다 진입 장벽이 높고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사업이었다. 즐거웠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 나는 샐러드 가게를 선택했다.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되어도 결국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한다.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이 원초적인 행위만큼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다. 가장 아날로그하고 가장 인간적인 영역, 그리고 난 이 과정에 대면하는 힘을 발견했다.
내 명함이 여러 개인 것은 이 불확실한 시대에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자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가장 치열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