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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Dec 01. 2022

11, 12월쯤 되면 아프기 시작하는 선생님들

드디어 겨울이 왔다. 진짜 겨울.

아침부터 출근하는데 너무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10여 년 전 살을 40kg 가까이 감량 후 도로 다시 5kg가 더 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에 참 약하다. 원체 많은 지방에 둘러싸여 있었던 몸이라 그런가 보다.


살이 빠진 이후로는 추운 곳에 가면 죽을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한 편, 학교에서도 매년 11월, 12월 즈음이 되면 아픈 선생님들이 늘어난다.


아무래도 1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긴장이 풀린 탓도 있을 것이고.. 날이 급격하게 추워져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오는 번아웃이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는 11월, 12월에는 정말 많이 변한다.


3, 4월 때만큼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도 않고(일단 이제는 담임선생님의 스타일도 익숙하고, 많이 친해졌으니깐...), 학급 친구들끼리도 엄청 친해져서 무지막지하게 떠든다.


또 날이 추워지다 보니 아이들이 주로 교실에 있는데 아이들의 급격하게 커진 체구에 비해 교실이 좁다 보니 몇 명이 뛰어다니기만 해도 바로 어디 부딪히게 된다.


(우리 반 아이들의 체구를 말해보자면 80킬로대가 2명, 90킬로대가 1명이 있다. 그리고 학급 내 비만 인구는 약 30%가 넘는다.. 5학년임;)


이처럼 아이들이 무지막지하게 떠드는 것과 교실에서 답답하다 보니 자꾸 뛰려고 하는 것, 아이들끼리 서로 친해지다 보니 감정의 골 역시 깊어진 것, 익숙해진 교실 환경 속에서 편하게 행동하는 것..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 시너지를 내는 달이 11, 12월이다.


나 역시도 11월부터는 아이들의 고삐를 잔뜩 죄고 있다.


저번에 어떤 아이가 쉬는 시간에 배트 가지고 휘두르다가 친구 쌍코피를 터뜨린 이후로는 안전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다.


좀 더 유심히 지켜보고, 좀 더 귀 기울여 듣고, 좀 더 신경 써서 챙기는 중이다. (엄청난 공력을 들이는 중 ing)


겨울방학 전까지 모든 공력을 들여 철저히 살피지 않으면 학교폭력이 일어나거나 안전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배 선생님들도 내게 방학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을 더더욱 신경 써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날씨는 추운데 어제 전체 교직원 회식이 늦게 끝난 여파가 있다 보니 아침부터 몸이 아프고 피곤했다. (어제 5시간을 선배 선생님들과 함께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저녁에 샤부샤부 먹을 땐 여러 번의 야채 리필에 죽 제조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ㅠㅠ)


나는 오늘 웬만하면 조퇴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할 일이 산더미 ㅠㅠ) 몸이 힘드니까 자꾸 애들한테 약간 예민하게 굴게 되었다.


아침부터 별 거 아닌데도 막 밉게 보이고, 말도 더 상냥하게 못 해주고, 그런 것들이 나 스스로 느껴졌다.


나는 애들한테 화가 날 때엔 내가 지친 것이 아닐까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내가 오늘 가만히 나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지쳐있는 것이 맞았다.


11월 한 달간 이어진 학급 집중 관리... 이제 12월.


나는 남은 한 달을 더 달려야 하는데 11월 한 달간 제대로 쉬지 못했고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일이 있어 스스로의 마음을 충분히 돌봐주지 못했다.


오늘 나는 조퇴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충전해서 겨울방학 전까지 성심성의껏 일할 것이다.


겨울이 들어서면서 아픈 선생님들이 전국에 많이 계실 텐데 그분들도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고 아이들을 챙기셨으면 좋겠다.


♥♥♥ 교사의 솔직한 학교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교사라는 세계> 입니다:)

♥♥♥ 유튜브 <교사의 세계>에 놀러오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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