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얘가 저한테 절 두 번 했어요.
죽은 사람한테 절 두 번하는 거 아니야?
애들이 나한테 올 때는 일단 긴장부터 하게 된다.
보통 70% 확률로 고자질이기 때문이다.
(20%는 화장실/보건실/도서실 갔다 오겠습니다, 10%는 자기가 만든 거 자랑하기 등등임)
'또 뭘 이르려나...'
약간은 걱정되고
약간은 귀찮은 마음으로 흥분이의 말을 들어보았다.
흥분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자주 흥분하고 에너지가 넘쳐서 주의를 받곤 하는 남자아이다. 애 자체는 순진한 구석도 있고 영민한데 본인 자체가 워낙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다 보니 종종 과격한 행동을 하곤 한다.
흥분이는 나한테 와서 특유의 씩씩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째가 저한테 절 두 번 했어요."(맨날 '쟤' 발음을 째라고 한다. 귀여움..ㅋㅋㅋ)
순간 오잉 싶어서 물어봤다.
"절 두 번 하는 게 무슨 의미지?"
그러자 흥분이 가 대답했다.
"절 두 번 하는 거는 죽은 사람한테 하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행동을 하다니...
나는 통실이를 불렀다.
통실이는 둥글둥글한 얼굴에 눈도 동그랗고 살집이 통실통실한 외적으로는 아주 귀여운 남자아이다. 그러나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맨날 핸드폰만 해서 약간 도 넘은 언행을 할 때가 많다. (아마 유튜브 같은 데서 배우는 것 같다.)
목소리도 어눌하고 귀여운데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아서 가끔 깨는 아이다. 외모만 보면 너무 귀여운데...
통실이는 뒤뚱뒤뚱 나한테 걸어왔다. 이미 자기가 한 행동을 알고 있다.
흥분이가 나한테 와서 이를 때부터 흘긋흘긋 우리 쪽을 보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다 알아.
통실이는 멈칫멈칫 어기적어기적 나한테 걸어와 두 손을 꼼지락대며 눈치를 보았다.
"통실아, 너 얘한테 절 두 번 했어?"
- 아.................. 네...
"절 두 번 하는 게 무슨 뜻이에요?"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왜 그랬어?"
-장난이었어요......
"너 만약에 이런 행동을 하고서 흥분이한테 안 좋은 일 생기면 어떡할래요? 네가 견딜 수 있겠어?"
-(뭔 말도 안 했는데 벌써 통실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 글썽글썽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너 만약에 흥분이한테 안 좋은 일 생기면 죄책감 때문에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그 큰 눈망울에 눈물 또르르.. 눈물 닦다가 눈곱도 다 묻고 으구..)
"흥분이한테 미안해서 너도 잘 살겠어? 아마 계속 미안하고 죄책감 들겠지..."
내가 엄청 슬픈 얼굴로 얘기하니까 통실이가 흥분이를 미안하게 쳐다보며 팔을 한 번 쓰윽 쓰다듬었다.
(갑자기 상상해보니 미안한 듯..)
"너 흥분이 싫어해?"
-아니요.....
"흥분이가 우리 옆에 계속 건강하게 있었으면 좋겠잖아.. 그런 행동은.. 진짜 아니었어. 선생님도 아까 듣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
-생각해보니 흥분이한테 미안해요.......(흥분이를 애틋하게 쳐다봄)
"우리 그러면 이거 어떻게 말을 취소하는 방법 없나...? 흥분이한테 그런 말 한 게 나쁜 기운이 되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아 맞아! 우리 <센과 치히로> 영화에서 동그라미 그린 다음에 가운데를 손으로 가르는 행동 있잖아. 그거 저주 푸는 행동 같은데 그거 해줄까?"
출처: https://m.blog.naver.com/kebsz0410/221365952962
"흥분아 동그라미 그려봐요."
흥분이가 갑자기 "아 네;"하더니 엉거주춤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더니 통실이가 눈물 젖은 얼굴로 느릿느릿 동그라미 가운데를 손으로 갈랐다.
자기도 그러고 나서 후련한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흥분이도 기분 풀려서 살짝 웃음 참는 거 보이고..)
나도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웃참했다)
흥분이와 통실이는 맘이 풀렸는지 뒤돌자마자 바로 잡기놀이를 시작했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메가울트라 5G급이다. 대단함ㅋㅋ (그렇지만 위험하니까 교실에서 제발 잡기놀이하지마...ㅠㅠ)
자칫하면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이었는데 부드럽게 잘 풀어나간 것 같아 나 자신이 기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