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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May 31. 2023

아이들한테 대피소가 어딘지 물어봤다.

호홓

한창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자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삐이이'하는 비상음이 울렸다.

순식간에 잠이 깨면서 1초 만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봤다.

긴급상황이니 대피하라는 긴급문자가 와있었다.


문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우우웅-울리면서 뭔가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아저씨 음성이었는데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대충 긴급상황이라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속보 뜬 게 있나 보려고 네이버를 켰다.

네이버도 먹통이었다.


순간 통신까지 마비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감이 엄습했다.


'전쟁이 났구나.'


가만히 있다가 죽을 거 같아서 혼비백산한 상태로 바로 거실로 나가 옷을 갈아입고

대피할 준비를 했다.


과자를 챙기고 (비상식량)

물을 마시고 (오랜 시간 물 못 마실 상황 대비)

운동화를 신었다. (슬리퍼 신으면 발이 다칠까 봐)


급하게 대피 준비를 하면서 머릿속에선 우리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죽으면 안 되는데.... 다들 괜찮겠지..?'


그리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휘이잉이이----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뭐지?


이게 폭풍 전야의 상황인 건지

별 일이 아닌 건지 상황판단이 안 됐지만

일단 다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잔뜩 놀래서 전화를 받으셨다.


"무슨 일이야!!!"


꼭두새벽부터 전화하니 놀라셨나 보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가슴이 더욱더 쿵쾅쿵쾅 댔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괜찮아? 지금 긴급문자 왔어~!!"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다.


"잉? 아 그래? 괜찮아~ 깜짝 놀랐잖아~ 출근 잘하고 걱정 마~^^ 엄마도 출근해야 돼서 끊을게 뿅"


그러더니 아빠한테도 톡이 왔다..

참.. 평화로운... 카톡...ㅋㅋㅋㅋㅋㅋ


마침 오경보였다는 문자도 와서 기분 좋게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한테 물어봤다.


"여러분 아침에 긴급재난문자 온 거 봤어요?"


내 질문을 듣자마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목청을 높였다.


-네!!!!!!! 저는 참치캔 챙겼어요!!!

-갑자기 자는데 엄마가 깨워서 놀랬어요!!

-전 몰랐어요!!!

-민방위 훈련 아니에요??


마침 우리 학교는 며칠 전 재난 대피 훈련을 했었다.


아이들한테 물어봤다.


우리 이런 문자가 왔을 땐 어디로 대피하는지 알고 있나요?


아이들이 멋있게도 3가지 장소를 이야기했다.


1. 지하철

2. 학교

3. 지하주차장


대피장소는 어른들도 헷갈려하는 건데 아이들은 술술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호호 평소 안전교육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군'


이참에 다시 한번 물어봤다.


"불이 나면?"

-수건에 물을 묻혀 코를 막고 비상구로 대피해요


"지진 나면?"

-책상 밑에 숨고 머리를 보호해요


"미사일 떨어지면?"

-대피장소로 대피해요


"챙길 물품은?"

-참치캔, 과자 같은 거요!

-응급의약품이요!

-물이요!

-손전등이요!

-라디오요!


호호 호홓ㅎㅎㅎㅎㅎX1


"우리 얼마 전에 구명환 던지는 것도 배웠는데 기억나요? 구명환은 어떻게 던질까요?"

- 물에 빠진 사람보다 멀리 던져요!


호호 호홓ㅎㅎㅎㅎㅎㅎㅎX2


아직 10살밖에 안된 꼬맹이들 입에서 안전 수칙이 술술 나오는 걸 보니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항상 먼저 조심하고 준비해서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오늘 온 긴급문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이들과 나는 오늘보다 덜 당황한 채로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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