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11시경에 이마트로 장을 보러 나가는 내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내는 '된장찌게'라고 이야기했다. 해 달라는 말이다. 요즘은 '프랑스식 김치'라고 하는 '당근 라페'에 빠져서 된장찌게를 해 달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몸이 성치않은 오늘은 그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나는 깊은 맛 혹은 아주 뛰어난 별미와 같은 수준으로 된장찌개를 만들지는 않지만, 비교적 먹을 만한 정도로는 요리가 가능하다. 시대를 잘 타고나서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에 '된장찌개를 만들지는 않지만'이라고 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만들려면 더 다양한 재료와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누가 뭐라고 해도 된장찌개 맛의 근본은 된장이다. 그러나 내 실력으로 마트에서 파는 된장을 사용할 경우 그냥 누구나 아는 평범한 된장찌개 밖에는 만들 수 없다. 그래도 먹을 만은 하다. 사실 된장찌개는 요리라고도 할 수 없다. 재료의 손질에 약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간단한 편이다. 너무 자주 하다보니 이젠 그때 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기준으로 나름 다양한 버전의 된장찌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손도 빠른 편이기 때문에 '먹을 만한 된장찌개'는 매우 빠르고 간단하게 준비가 가능하다.
아내는 어제 난소에 12cm 이상으로 비대하게 자란 거대 물혹을 제거하는 응급 수술을 마치고 오늘 11시쯤 퇴원했다. 불가피하게 다인실에 배정되어 잠을 설쳤기 때문에 귀가 후 바로 침대에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최종적으로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술이 아주 잘 되었고 경과도 좋기 때문에 하루만에 조기 퇴원을 한 것이다. 담당 의사는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지금상태로 보면 문제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확율로 거의 양성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 느꼈던 당혹감은 이제 대부분 사라졌다. 비록 24시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입원은 입원이기 때문에 다양한 물건을 챙겨갔었고 방금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모두 제 자리에 돌려 놓고 막 장을 보러 나서던 참이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나는 조금 전에 치약, 칫솔, 양치 컵, 혀 세척기, 인공 눈물, 속옷, 수건, 가디건, 실내화, 생수, 갤럭시탭, 이어폰, 충전기, 병원에서 조제해준 약, 약국에서 구입한 수술 자국을 보호할 방수 패드, 소독약 셋트 그리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세안 용품 등을 큰 쇼핑백에 담아서 집에 돌아왔고 아직 몸을 움직이기엔 좀 무리가 있는 아내를 대신해서 그 물건들을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역시 다 죽어가는 가는 목소리로 투정부리듯이 '미역국을 먹어야겠어'라고 했기 때문에 서둘러서 물건을 정리한 후에 즉석 미역국을 사기 위하여 바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 두 번 먹을 정도의 양이라면 미역국은 사 먹는 것이 편하고 싸다. 물론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잡곡과 현미를 잘 섞어서 깨끗이 씻은 후에 압력밥솥의 스위치를 켜 놓았다. 미역국을 먹으려면 따뜻한 밥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밥솥의 스위치를 켜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바로 그 때 '된장찌게'라는 아내의 가는 목소리를 들었다. 물론 알았다고 했다. 식은 죽먹기 보다도 100배는 더 쉬우니까 말이다.
식은 죽을 먹어 봤는가? 상당히 먹기 싫다. 물론 아무런 자극이 없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식은 죽이니까 식은 죽먹기라는 식으로 아주 하기 쉬운 일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식은 죽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식은 죽은 먹기가 쉽지 않다. 죽이 식으면 어떻게 될까? 불어 버린다. 불어버린 식은 죽이 먹기 쉽기는 어렵다. 따라서 식은 죽 먹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된장찌개를 만드는 것이 쉽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 된장찌개는 만드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번거롭다. 각종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제대로 맛을 우려내려면 꽤 오랜 시간 끓여야 한다. 게다가 오늘은 무더운 날씨이기도 하다. 그런 환경에서 뜨거운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을 쉽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내의 2차 주문인 된장찌개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밀어 넣고 이마트로 출발했다. 신속하게 즉석 미역국, 대파 등 된장찌개 재료와 아내가 간식으로 먹을 빵 등을 사서 집으로 서둘러서 돌아왔다. 점심 식사 후에 약을 챙겨 먹이려면 빨리 와서 된장찌개를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사온 재료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된장찌개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꺼내서 손질하여 된장찌개를 끓였다. 동시에 내가 먹을 닭볶음도 같이 준비했다. 닭볶음은 밀키트로 되어 있어서 양념을 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지만, 양파, 버섯, 대파 등의 야채는 추가로 손질해서 넣어야 했다. 아무튼 아내를 위해서 된장찌개를 만들고 내가 먹을 닭볶음을 동시에 조리했고 매우 성공적으로 1시가 되기 전인 12시 47분에 두 개의 요리를 끝낼 수 있었다. 이마트로 출발하기 전에 스위치를 켜 놓은 밥도 개별 용기로 모두 옮겨 담아서 먹기 편하게 해 놓기도 했다.
이제 아내가 먹을 차례이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러 아내에게 갔더니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간밤을 완전히 꼬박 새우듯이 잠을 설쳤기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다 죽어가는 소리로 '된장찌개'라는 말을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수술 이후에 항생제를 제 때에 먹어주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한 번 정도는 건너 뛰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된장찌개와 따뜻한 밥이 아니라 잠이다. 약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경우는 정말 불가피하게 약을 처방 받은 경우라도 몇 번 먹다가 차도가 좀 확인되면 더 이상 복용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먹지 않고 몇 일 지나면 결국 완쾌하게 되는 걸 보면 먹지 않았던 선택은 거의 언제나 옳았다. 물론 매우 위중한 병이면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만, 내가 먹지 않은 약은 알러지 약이나 감기약 정도 였기 때문에 투약을 임의 중지해도 큰 위험성이 없었던 것이기는 하다. 아내의 경우는 수술 후 회복중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약을 제 때에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을 억지로 먹는 것보다는 지금 잠을 자는 것이 약을 먹는 것 보다 더 원기 회복에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조용히 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된장찌개는 다시 데우면 그만이다. 그리고 밥은 다 퍼서 별도 용기에 담아 놨기 때문에 곧 식어버리겠지만, 다행히도 나의 아내는 더운 밥을 싫어한다.
지난 24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특히 응급실에 도착하여 긴급 진단 이후 CT 촬영을 하고 의사가 응급 수술을 결정했을 때는 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큰 통증을 느끼면서 급히 내게 전화를 한 아내의 심각하게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차를 몰고 급히 달려갈 때에 이미 평정심을 많이 잃었었다. 내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랄 정도로 당황한 나의 모습은 나 스스로도 너무도 낯설었다. 어이없게도 시속 30km 속도 제한이 있는 곳에서 과속을 했고 순간적으로 번쩍하고 나의 과속 순간을 찍은 카메라의 존재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어떤 긴박한 감정에 압도되어 있었다. 실제로 30km 속도 제한이라고 쓰여진 교통 표지판을 봤지만 그걸 무시하고 달렸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걸 바라보면서도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마도 1초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당시 아내의 고통이 내게도 느껴졌던 것 같다. 1초라도 빨리 그 속에서 꺼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상황이 거의 해제된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가 되긴 한다. 알다시피 30km 스쿨존에서의 과속 범칙금은 상당하다. 이렇게 사람은 간사하다.
아무튼 수술실로 침대에 실려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 수술을 받는 동안 밖에서 2시간 가량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다. 의사가 2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1시간 10분만에 불렀을 때는 또 한 번 철렁했다. 통상 예상보다 빨리 보호자를 부르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으로 실력 좋은 의사를 만나서인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의사는 수술로 떼어낸 부분을 직접 보여주면서 완벽하게 수술이 종료되었음을 설명해 주었다. 최근 의사 파업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담당 의사인 '엄정민 과장님'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본분을 다해 주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수술 결과가 좋았고 따라서 조기 퇴원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아찔한 순간을 되돌아 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고유한 병원 냄새는 누구나 알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사고를 당해서 한 달 정도 입원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내가 퇴원했을 때 내 몸에도 그 '병원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도 금새 알아채시고 '퇴원했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24시간이지만 그 시간동안 맡을 수 밖에 없었던 병원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 냄새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병원 냄새는 고통와 죽음, 우울함과 슬픔, 애도, 무력감 그리고 좌절감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피했다. 내가 약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는 듯이 아내는 퇴원하자 마자 '된장찌개'를 외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다 끓여 놓은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이 지금 온 집안에서 은은하게 느껴진다. 짧디 짧은 입원 기간 동안에 아주 미세하게 아내와 나의 몸에 배인 희미한 병원 냄새는 이미 다 사라졌다. 나의 된장찌개는 그렇게도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곧 아내가 일어나면 다시 된장찌개를 데울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구수한 향이 온 집안에 퍼질 것이다. 구수한 된장찌개의 향은 마음도 편안하게 해 준다. 나의 '조리가 간단치만은 않은' 된장찌개를 먹고 아내가 빨리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아픈 아내 보다 더 나쁜 아내는 없기 때문이다.
(첨언) 퇴원 후 열흘이 지나고 다시 병원에 방문하여 조직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불안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좁쌀크기만했던 불안감도 이젠 없어졌다. 정말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