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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명품이 필요한 이유

이유가 타당하면 사라. 그런데 아니라면 구매를 멈추라.

by Eaglecs

2024. 04. 16


들어가는 글


명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자존감으로 글이 이어졌다. 이런 글을 쓴 이유는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과도한 투입(소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그걸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그렇게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품질이 좋기 때문에 무리 해서라도 구매를 서두르는 것일까? 사실 이 주제는 어쩌면 예민하게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내 관점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나의 '나도 모르게 왜곡된' 시선으로 멀쩡하고 합리적인 ‘명품’소비자가 오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합리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공감을 얻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 이유는 있을 지도 모를 비합리적 소비자의 발길을 매장에서 집으로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발길이라도 집으로 돌리길 희망해 본다. 특히 젊은이의 발길을 말이다.




본문



명품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꽤 역사는 깊지 않을까? 원래 명품은 아마도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장인이 만든 고품질의 제품을 일컬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제품에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서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名品, 즉 제품에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제품에 특별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비명품과 구별되는 특성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이름을 붙이지만, 名人이라고 하여 사람도 어떤 것에 대하여 출중한 능력이 있을 경우 같은 방식으로 가치를 부여한다. 더 대중적인 말로 표현하면 이미지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명인은 그냥 ‘高手’ 혹은 ‘達人’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식적으로 원래 어떤 상품 혹은 물건은 그냥 그 자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주어진 하나의 공통 명칭으로 불렸을 것이다. 수박은 그냥 수박이었는데 어느 시점에 ‘고창 수박’, ‘무등산 수박’ 등 수박에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그만큼 제품의 품질이 올라갔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자신이 붙은 것이고 그 생산자는 그 높아진 품질에 추가적인 특성을 붙이고 그걸 가치로 환산하여 제품에 얹고 싶은 합리적 욕망이 생긴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명품이라는 타이틀은 소비자에게는 추가적인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만큼의 어떤 가치가 추가 소비된 것을 대가로 월등한 품질과 더불어 공개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비싼 것 먹었다고 말이다.

자랑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나와 관련된 뭔가가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어떤 성과이든 그게 꽤 괜찮았을 때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살만한 경우에 하는 자연적인 행위일 뿐이다. ‘자랑스럽다’ 라는 말에 어떤 부정적 이미지가 베어있지는 않은 것으로 볼 때, ‘자랑’은 최소한 그냥 중립적 이미지를 갖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단어 옆에 ‘질’이라는 한 글자가 추가되면서 시작 된다. ‘자랑질’이 그거다. 여기엔 억지로 뽐내는 이미지가 추가된다. 아직 최악은 아니지만 이미지가 슬슬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는 수박을 예로 들었지만 통상 명품은 의류나 잡화(지갑, 벨트, 넥타이, 모자) 그리고 신발, 시계, 등 자신을 외부로부터 포장하면서 동시에 외부로 보여지는 제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무슨 무슨계의 명품’ 이라고 하여 현대인은 거의 모든 영역에 명품 타이틀을 부여하고 거기에 더 가치를 매기려고 한다. TV도 명품이 있고, 수저도 명품이 있고, 프라이 팬에도 명품이 있다. 이게 잘못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명품의 본래의 뜻인 상당한 고성능, 고품질을 보이는 훌륭한 제품이라서 그 제품이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으면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Luxury.jpeg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런데 통상적으로 명품이라고 하면 약간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다. Luxury Brand가 명품이라는 영어 표현인데 Luxury는 사치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사치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치품은 나쁘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스럽지만 어떤 사람에겐 평범한 물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급여가 얼마 되지 않지만 친구들과의 비교 그리고 남들이 나를 우습게 볼 것만 같은 우려로 명품을 무리하게 구입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직장인이라면(특히 젊고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싶어하는) XX 하나쯤은 다 있지 않냐? 라는 식의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상표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명품의 이름쯤은 하나 정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품이 하나도 없는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내 연봉이 얼마인데 이것 하나쯤은 ‘나를 위해서’사도 되, 라고 말이다. 맞을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자신에게 맞는 소비인지 아닌지를 보려는 것이다. 즉, 그게 자신에게 사치품인지 아니면 그냥 급여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그’ 혹은 ‘그녀’가 사도 되는 하나의 상품인 것인지를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도 아주 간단하게 말하겠다. 만약 그 청춘이 그 수 백만원 짜리(통상 그렇다고 한다) ‘명품’을 살 때 일말의 주저함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합리적인 제품을 구매하여 소비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사치품’을 구매한 것이다. 딱 하나 쌌는데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좋다. 하나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면 그때는 내 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형편(주제)에 맞지 않는 ‘사치품’을 산 것이 되는 것이다.


사치품이라는 것은 분수를 넘는 제품이고 생활 편의성에서 요구하는 정도를 넘치는 제품에 붙여지는 이름이지 품질이 월등이 뛰어나거나 아름다운 제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산 것이 명품이지만 자신에게는 ‘사치품’의 범주에 들어가면 그건 당신에게 이미 ‘명품’이 아니라 단순한 ‘사치품’일 뿐이다.


그래도 내게 덧씌워지는 좋은 혹은 자랑할만한 이미지가 남지 않냐고? 물론 일부 멋진 혹은 비싼 이미지가 남아서 당신을 빛내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신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형편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그 제품, 즉 ‘명품’이 당신에게는 과한 ‘사치품’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이 뭘 생각하던 나만 좋으면 된다고 하면 더 할 말은 없을 것 같은데, 난 남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명품입니까.jpeg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명품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내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닐까? 너무 멀리갔나?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기 만족이라는 자체 최면을 통하여 분에 넘치는 ‘사치품’을 구매하여 자신의 본질(실제 형편)을 가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결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거의 비슷한 사례로 ‘카푸어’를 예로 들수 있다. 경제적 능력이 되지는 않는데 ‘매우’ 좋은 차를 타고 싶은 경우이다. 이 역시 튼튼하고 성능이 좋은 차를 타서 내가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을 보호하고, 고가의 차인만큼 우수한 강성과 내구성이 있기 때문에 잦은 정비가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출력을 자랑하는 고 성능차의 빠른 감성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냥 좋은 차로 나를 포장하고 싶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서도 ‘매우’ 좋은 그 차는 어떤 사람에게는 품질이 좋은 소비재라고 할 수 있는 ‘명품’일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카푸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그 차의 구매자의 경제 수준이 어떻다는 것이 매우 분명히 보여지고 있지 않은가? 단어속에 Poor가 이미 들어가 있다. 이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명품에 목을 맬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기사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경제 규모 대비하여 명품 구매 비용이 1등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명품 소비가 존재하는 곳이 이 나라라는 이야기이다. 그 많은 사람들은 왜 명품을 살까? 너무너무 명품을 사고 싶은데 경제적 요건이 불충분하니 그 대체품인 짝퉁, 요즘말로 ‘짭’을 사기도 한다. 정확한 추정치는 모르겠지만 ‘짭’의 시장 규모도 엄청나지 않을까?


나는 사람들이 명품 구입에 열중하는 이유는 매우 명확하며 사람들은 이미 심적으로는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것이다. 좀 더 완화시킨다면 그걸로 자신이 (지금도 훌륭하지만) 조금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명품에 집착할까? 내면이 공허해서가 아닐까? 자존심 말고 자존감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자존감은 남도 귀하지만 나도 귀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자존감이다. 스스로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뭔가 덧대에서 가릴 욕구는 줄어들지 않을까? 그러면 자존심은 무슨 의미일까? 다들 알겠지만 자존감과의 비교를 위하여 풀어쓰면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되 그 과정에서 남과 비교하는 것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있지 내가 말이야....’ 하는 톤에는 누군가와의 비교가 암시되어있다.


그러면 자존감이 좀 강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굳이 명품에 집착하지는 않지 않을까? 그럼 왜 자존감이 없을까? 계속 '왜'를 앞세우면 끝이 없으니 이걸 마지막으로 다루고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왜 자존감이 없을까? 위에서 자존감의 의미를 거론했는데 그걸 다시 써보자.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자존감이라고 했다. ‘남도 귀하지만 나도 귀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도 자존감이라고 했다. 따라서 당신이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즉, 선택의 문제이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그렇게 여기지 않으려는 선택을 '당신'이 한 것이다.


내 주제에 감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당신은 모든 면에서 한 참 떨어지는 상등신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오해 말라. 나는 불특정 다수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냥 다들 평이하고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적어도 외모에 있어서는 말이다.


늘 대중매체에 비추어지는 멋진 외모의 ‘나와는 다른 종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인간’ 만 보다 보니 자신을 너무 왜소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솔직해지자. 거울을 보고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는가? 그게 일종의 자존감이다. 단, 남과 비교를 하는 순간 그건 자존심이 된다. 비교하게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떤 차이를 찾게 되고 거기에서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갈라 놓게 된다. 이게 비교이다. 비교를 하지 말고 관찰을 하면 어떨까? 굳이 비교하여 열등과 우등을 가리지 말고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더 좋지 않을까? 내 모습이 평범한 것이 죄는 아니지 않나? 심지어 남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스스로 나를 어떤 범주에 몰아 넣고 포장을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러지 말자.


키가 큰 것은 선이고 작은 것이 악은 아니다. 못생긴 것이 악이고 잘 생긴 것이 선도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른 것이다. 그 다름을 인정할 때 당신의 자존감은 1%씩 상승할 것이다. 너무 속도가 느리다고? 욕심 부리지 말자. 그동안 없었던 혹은 매우 부족했던 자존감이 그렇게 후딱 생기면 그동안 왜 당신에게 그 자존감이 없었겠나. 진작에 생겼지.


청바지에 흰 면티만 입어도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보통 연예인이다. 그러나 당신도 청바지에 흰 면티만 입어도 나름의 빛이 날 수 있다. 물론 광휘의 정도가 약간은 다르긴 하겠지만 당신도 빛을 낼 수 있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약간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이 나쁜 것, 당신이 한 참 못난 것이 아니라 약간 다른 것이다. 그걸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당신이 먼저 이해할 때 당신을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사치품’을 명품인줄 알고 사는 우를 범하는 횟수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나가는 글


단도직입 적으로 말하겠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아주 일부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내나 남편 등 가족만이 관심이 좀 있지 그 외의 타인은 당신이 겉에 뭘 두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여기서 좀 더 솔직해지자. 남편이나 아내도 당신의 치장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없다. 옷이든 뭐든 걸치고 나서 이거 어때? 라고 남편에게 물어도 남편은 다 좋아, 다 예뻐, 이러지 않았나? 다 좋고 다 예뻐서가 아니라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이 없다는 말은 싫어 한다는 것이 아니니 절대로 오해는 말라.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치장보다는 당신 자체를 좋아하고 예뻐한다는 것이다. 이게 진실이다. 명품을 사주지 않으려는 남편의 개수작으로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러나 '개수작'은 1% 내외의 아주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나머지 99%는 정말 당신 자체에 가치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믿어라. 이미 결혼을 했고 물릴 것도 아니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예를 든 '급여가 아직은 좀 부족한 젊은 직장인'에게도 나의 작은 한 마디를 남긴다. 당신이 그 누가되었든 일단 거울을 봐라. 너무 젊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 자체에서 분출되는 밝고 긍정적인 빛을 굳이 '어른들의 사치품'으로 가리지 마라.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젊은이들은 진짜로 청바지에 흰 면티만 입어도 예쁘고 빛이 난다. 물론 깨끗하게 입어야 한다. 믿어봐라. 그리고 무엇보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찾도록 해 봐라. 자존심은 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자존감은 나의 내면을 서서히 강하게 하고 타인을 더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누가봐도 명확하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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