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 모습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들어가는 글
2019년 가을 새벽에 또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어느 ’직장인‘ 아버지의 수필이다. 그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민 그리고 책임감이 지금도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봄이지만 말이다.
여러분에게 혹시 50대 ’직장인‘ 아버지가 있다면 그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40대 혹은 50대 직장인이면 약간은 공감이 될 장면이 묘사된 수필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공감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외롭고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살지 않는가? 그 사람이 가장이든 아니든 말이다. 오늘 한 인간이 이른 새벽 아침에 느낀 단상을 만나 보면서 당신의 아침을 회상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더 잘 살아내길 희망한다.
본문
새벽 아침 공기는 서늘하다. 지금은 10월 하고도 21일. 내일 모레면 11월이 되고 이는 본격적인 겨울을 맞기전에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아침 공기는 서늘하다. 새벽에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나기 어려운 수만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서늘한 아침 공기일 것이다. 오늘은 새벽 1시 38분에 첫잠을 깼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뭔가 긴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잠이 들면 다음날 일어나야할 시간에 맞추어진 알람이 울리기 전에는 절대로 깨지 않는 내가 1시 38분에 저절로 눈을 떴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무게감이 내 정신을 눌렀기 때문이리라.
다시 잠을 청한 후 4시 20분에 2차 기상. 이때는 알람을 듣고 있어 났다. 역시 다시 드러누웠고, 겨우 4시 53분이 되서야 빌빌거리며 이불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때 0.001초 만에 느낀 첫 느낌이 10월 하순 새벽 아침의 서늘함이었다. 한 마디로 추웠다. 거실로 나와서 호기롭게 윗옷을 벗어서 의자에 걸치고 욕실로 걸어갔지만, 걸어가는 내내 서늘함에 자꾸 몸이 움출어들었다.
이렇게 서늘한 10월의 새벽 아침을 뚫고 회사로 가기 위하여 준비를 마치고 차로 향했다. 새벽 이슬이 차 윗부분에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차량 윗부분 전체를 그렇게 서늘한 기운이 덮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착석하였을 때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서늘함은 차 천장에서 밤새 노려보면서 찬 기운을 차 안 속으로 밀어 넣은 그 이슬들 때문이리라. 이내 차량의 시동이 켜지고, 좌석의 바닥에 깔린 온열 기능을 가동하자 좌석에서 느껴졌던 찬 기운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식으로 아침을 열고 한 시간을 달려서 회사에 도착하였다.
6시 10분 회사 도착.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나의 출근 시간은 조금씩 늦어져 간다. 체력이 떨어져서 일 것이고 열정과 호기심이 조금씩 줄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큰 사무실의 문을 처음으로 여는 사람은 오늘도 나였다. 내 기준에서의 열정과 호기심은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줄어든 열정과 호기심보다 더 큰 열정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서늘한 아침은 사무실에 도착해도 약 한 시간 이상 지속된다. 그 시간동안 난 혼자 족히 300평은 넘어 보이는 사무실을 온전히 나의 체온 만으로 덥히고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6시 30분 경이 되면 2~3명이 더 출근하여 나를 도와 사무실의 실내 온도을 높여주긴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맨 처음 뭔가 시작하는 사람이 제일 힘이 들고 제일 에너지를 많이 쏟아 붓지 않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큰 사무실에 온기를 채우는 발화제는 바로 나라고 할 수 있겠다.
새벽 공기가 서늘한 것도 있지만, 사실 이 사무실에 들어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내내 내 마음은 따듯하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서늘함이 오래가는 것 같다. 이 사무실에서 난 왜 서늘함을 느낄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내가 선택해서 하고 있고 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난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난 내가 이 회사에서 하고있는 일, 특히 지금 맡고 있는 직책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데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직책에서 필요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크게 불만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맡고 있는 직책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강요되어지는 부분에 대하여는 불만이 있고 만족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로 인하여 흥미와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마지 못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저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습은 적지 않게 역동적이지 못하게 보이곤 하며 이런 모습을 사람들, 특히 내게 어떤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에겐 긍정이 필요하다. 맹목적일지라도 일단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내가 별로 탐탁치 않게 느끼는 조건, 내가 해야 할 일 등에 대하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게 유리하다. 쉽지 않지만 그런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생각하는 대로 그리고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까지 50년 넘게 살아온 결과 그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도 내가 믿고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난 오늘도 단 한순간까지 모두 나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겠다.
절기의 변화와 더불어 찾아온 냉기로 난 오늘 서늘함을 느꼈지만,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서늘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 뿐이다. 서늘해서 좋다. 자연이 그리고 그 자연을 느끼는 나의 방식이 매우 적합하고 정상이라는 것이 오늘 또다시 증명되었다. 지금은 가을의 한복판이 아닌가? 그것을 오늘 아침에 그야말로 제대로 느낀 것이다. 가을의 서늘함, 가을의 청량함, 가을의 아림, 가을의 시원함, 가을의 고즈넉함, 이 모든 것이 오늘 아침에 담겨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대기에 충만해 있다. 이 가을에 느낀 서늘함이 내게 또 다른 사색의 기회를 주었구나.
끝
나가는 글
당신의 매일 새벽은 어떤가? 4월의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오늘 새벽은 어제 내린 비로 습기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인지 대기는 살짝 눅눅하고 봄날씨에 걸맞지 않게 약간 시원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매일 새벽 아침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 새벽을 이불속에서 맞이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밖으로 나와서 대기와 바람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하러 일터로 끌려가는 50대 가장의 모습이 묘사된 수필이지만 그과정 속에서 '그'는 단지 끌려가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을 느끼고 즐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힘을 얻기도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