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마신다. 모든 음주인의 고민일 것이다.
언젠부터인지 기억이 없지만, 주말의 경우는 이젠 정오 이전에 술을 마시기도 한다. 술을 마시더라도 최소한 12시는 넘어서 점심 식사를 핑계로 맥주, 소주, 와인, 사케, 막걸리 등 가리지 않고 그날의 기분에 맞는 술을 찾아 마셔왔는데, 슬금슬금 시간이 당겨지더니 간혹 오전 11시 40분 혹은 50분에 밥상 같은 술상의 준비가 완료되곤 한다. 그리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물론 토요일이나 일요일 점심이다. 중독일까? 걱정되어 알콜 중독을 판단해 주는 설문지를 통해서 자체 검증해 봤지만, 전혀 중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끊지 못하고 식사 때이든 혹은 중간에 간식이 필요할 때이든 술을 자주 마시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 난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먼저 아무도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제지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린다던지 심하게 마셔서 숙취를 괴로워 한다던지 혹은 아내가 나를 위해 해장국을 끓이도록 하던지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심지어 술상(내게는 밥상)도 스스로 차리기 때문에 나 이외의 손이 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니 전혀 없다. 조용히 내가 먹고 싶은 파스타를 해서 wine과 함께 즐긴다던지, 비빔 국수를 해서 막걸리를 마신다던지, 나만의 레시피로 번데기 탕을 끓여서 소주나 사케를 마신다던지, 다양한 방법으로 술과 접하되 나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식사와 함께 가벼운 음주가 끝나면 즉시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한다. 식사(안주)의 준비와 식사 후 처리에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1시간 혹은 1시간 30분이다.
이렇게 밥과 술을 처리하고 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술기운이 돌아서 쓰러져서 자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음주 후에 내가 하는 일은 여러가지이다. 동네 산책하면서 만보기 채우기, 간혹 팔굽혀펴기 등 집에서 하는 간단한 운동하기, 책보기, 청소하기, Internet에서 소일하기, 뭔가 정리하기, 등과 같은 일들이 내가 음주 후에 하게 되는 일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아내나 딸이 있어도 이렇게 한다. 그들에게 전혀 피해가 가지 않게 술을 마시는 것이다. 심지어 파스타 등을 조리할 때는 아내와 딸의 몫까지 준비하여 방까지 배달하여 주기 때문에 그들 또한 나의 음주를 기다리는 면이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내게 술을 좀 줄이라고 말을 한 사람은 장모님이다. 내가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꾸준히 마시는 것을 수년간 지켜봐 오시면서 좀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자네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닌가?'라고 걱정에 찬 목소리로 서너번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난 20년간 통털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거의 매일. 내가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소주 2/3병 --> 360cc X 0.66 = 237.6 X 25% 알콜 = 59.4cc 의 알콜
2. 맥주 500mg 2 can (최대) --> 1,000cc X 5% 알콜 = 50.0cc 의 알콜
3. 막걸리 한 병 --> 750cc X 6% 알콜 = 45.0cc 의 알콜
4. 와인 반 병 --> 375cc X 14% 알콜 = 52.5cc 의 알콜
5. 담금주 한 컵 --> 250cc X 35% 알콜 = 87.5cc의 알콜
6. 칵테일 한 잔 --> (80cc X 40%) + (50cc X 25%) = 32cc + 12.5cc = 44.5cc 의 알콜
7. 양주 3잔 --> 150cc X 40% 알콜 = 60cc 의 알콜
평균 회수당 57cc의 알콜을 섭취하는 것으로 대략 25% 도수의 진로 소주 2/3 병을 마시는 것이고 요즘 나오는 물같은 16% ~ 17% 알코올 도수의 소주 기준으로는 한 병을 마시는 꼴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평일은 위 기준량의 약 60% ~ 70% 정도를 마시고, 주말은 150% 정도를 마신다. 다시 계산해 보자.
평일 알콜 섭취량 : (57cc X 65%) X 5 = 185.25cc
주말 알콜 섭취량 : (57cc X 150%) X 2 = 171.0cc
합 : 356.25 cc.
이것은 17% 알콜도수 소주 한 병의 알콜 함량이 61.2cc 이므로 5.82병으로 계산 된다. 즉, 일주일에 소주 기준 6병을 마시는 것이다. 후하게 25% 알콜 도수 기준으로 계산해도 4병인다. 일 주일에 소주 4병에서 6병이면 '많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 첫 번째를 기술하다가 마시는 술의 양을 계산해 보니 상상 외로 많다. 아무리 깍아서 생각해도 위에 계산된 술의 양보다 크게 모자라게 마시지는 않는 것 같다. 즉, 대충 위 정도의 음주를 지금까지 십수년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간이 힘들 것 같다. 간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힘이 드는 것을 느낀다. 내가 술을 마시는 제 일번의 기술에 불과한데 이미 난 뭔가 깊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집에 있는 와인 셀러 부터 치워야 할 까? 어제 주문한 알콜도수 8도짜리 금정산성 막걸리 10병은 어쩌지? 차 트렁크에 예비로 챙겨둔 소주 1병은? 집에 잘 보관되어 있는 다양한 담금주는 버려야 할까?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나의 알콜 섭취량은 줄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어떤 수준으로 줄일지 한 번 계획을 세워 보자.
월요일 : 월요일이니까 안마신다. 정 마시고 싶으면 와인 150cc로 제한 한다. 150 cc X 14% = 21cc 알콜
화요일 : 안마신다. 정 마시고 싶으면 맥주 500 cc로 제한한다. 500cc X 5% = 25cc 알콜
수요일 : 안마신다.
목요일 : 안마신다.
금요일 : 주말이니까 마신다. 막걸리 한 병이 최대다. 750cc X 6% = 45cc 알콜
토요일 : 점심에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마시려면 저녁에 마시되 알콜 50cc를 넘지기 않는다.
일요일 : 저녁에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마시려면 저녁 전에 알콜 50cc를 넘기지 않는다.
실제로 안마시려는 날은 주 2회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 마시고 싶으면', '마시려면' 등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너무도 크게 만들어 놨다. 아무튼 합산하면, 191cc의 알콜로, 25% 알콜 도수 소주 한 병이 90cc의 알콜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약 2.1병이다. 역시 적은 양은 아니다. 게다가 평일에 회식이라도 있다면 약간의 알콜이 추가된다. 물론 회식이 있는 날을 귀가하여 술을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말이다. 몇일전의 경우도 회식에 소주 1.5잔(75cc X 17% = 12.75cc의 알콜), 맥주 100cc (4cc의 알콜)를 마셔서 총 알콜 섭취가 16.75cc 였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 기숙사에 들어갈 때 차에 있는 소주 남은 것 가져가서 2잔을 더 마셨다. 100 cc X 25% = 25cc의 알콜. 따라서 총 41.75cc의 알콜을 섭취하였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늘 정량화하라는 말을 했었다. 일을 해도 무엇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해서 구체적으로 몇 시간을 하는지 숫자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정량화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엄마에게 추가로 용돈을 요구할 때에도 친구랑 떡볶이를 먹어야 하므로 5,000원이 필요하다던지 혹은 공책을 2권 더 사야해서 2,000원이 필요하다던지 하는 식으로 이유를 구체적으로 댄다. 그래야 엄마의 지갑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물며 회사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전문 직장인들이라면 최소한 초등학생 보다는 더 정량화된 증빙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알콜 섭취량을 정량화해보니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좀 더 명확하게 보이게 된 것 같다. 애초에 나는 왜 술을 먹는가를 고민했는데, 그 첫 번째 답변에서 파생된 이야기에서 나는 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나는 왜 술을 마시는 가의 원인도 알 것 같다. 무식해서다. 술, 알콜을 자신이 얼마나 들이키고 있는지,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건강, 자신이 사용하는 시간의 질에 얼마나 많은 훼손을 가하는지 모르는 철저한 무식함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술을 그리도 많이 마셔왔던 것이다. 무슨 약 처럼 매일 적당량을 복용하면서 내 몸과 정신을 혼란 스럽게 해 온 것이다.
고민이 된다. 지금 현재 고이 보관중인 내 술들과, 오늘 배송 예정인 금정산성 막걸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답은 나왔다, 1. 집에 있는 담금주 등은 버리면 될 것이고(정말 맛있는 것 빼고), 2. 나머지 술들은 적당량씩 소모하여 없앤 후 3. 더 사지 않으면 될 것이고, 4. 배송중인 술은 계획했던 것 보다 더 많이 주변 사람과 나누고 나는 적게 마시면 될 것이다.
나의 고민에 대한 4가지 답이 위에 기술되어 있다. 솔직히 말하면 1번과 4번은 자신이 있는데 2번과 3번은 참 도전적일 것 같다. 고민을 해서 그 고민이 해결되면 고민이 없을 것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오늘은 이 땅의 많은 음주인들과 나의 고민을 공유한 것에 만족하고 일단 2번의 실행에 집중하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