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나에게 쓰는 편지

by 허은숙

겨울입니다. 하얗게 숨 고르는 들판을 바라봅니다. 들녘 위로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단체의 전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차가운 계절이지만 오히려 사람의 온기가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잠시라도 자식 같은 작품들을 내놓은 작가들의 삶을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산책이 다소 먼 곳입니다. 초동면으로 가서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신호리 신호저수지· 겨울 호수를 보았습니다. 겨울새들의 안식처이더군요. 추위에 웅크리는 날갯짓을 바라보았습니다. 후드득 날아오르기도. 잠시 쉬다가 추스르고 다시 날겠지요.


'동네 한 바퀴' TV에 출연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오후에 지인 몇 분이 방문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사람 사는 향기가 납니다. 좋아하는 악기를 가지고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송년이란 낱말 자체가 어울리는 시기이니까요.


요즘, 새벽이면 허한 기분이 듭니다. 달력이란 게 뭔지, 한 해의 끝을 달력에서 찾아야 맞는지. 내일이 지나면 한 해가 없어집니다. 이 시점에 나에게 어떤 편지를 써야 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다향님, 올해 참 수고했습니다라고 쓸까,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힘들었지? 토닥거려 줄까요. 여기까지 잘 왔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글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은 끝났으니 잊기로 합니다. 새로운 날이 펼쳐지기 직전입니다. 잘했든 못했든 시간은 무한히 흐릅니다. 나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나에게-



일 년을 돌아보니 예전보다 삶이 느려졌지만, 그만큼 더 깊어졌다. 상처받은 날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고, 기쁜 일에는 소소한 감사로 하루를 채웠다. 무엇이든 잘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동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다잡은 것도 큰 수확이다. 내년의 나에게는 더 관대함을 선물하자. 비교 대신 사랑으로, 조급함이 오면 깊은 호흡을 하자. 잘 보이는 삶보다, 잘 느끼는 삶을 선택하자. 힘들 땐 편지를 쓰자.! 너는 언제나 내편이라는 사실을. 내년에도 내면의 성장에 우선을 두자. 배움의 자세를 간직하고 살자. 그리고 건강하자.



사랑하는 다향!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날이 적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 저속노화가 되도록 하세요. 몸과 마음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새해에는 올해보다 나은 해가 되어야겠지요. 2025.12.30 -다향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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