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을 줍고 이끼를 깨우는 일

이끼동산기꾸기

by 허은숙


새날을 감사하며 아침을 연다. 햇살이 퍼지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본다. "밤새 안녕!"

하얀 서리에 덮여 있는 뜰을 걷는다. 발걸음은 언제나 소나무 아래다. 나지막이 솟은 이끼 동산에서 멈춘다. 이끼들은 얼어붙은 채 서로를 붙들고 있다. 작은 바위, 돌멩이에 붙어 생명을 유지하는이끼다. 누군가에게는 나무 밑동에 핀 초록 덩어리일지 모르나, 정원의 보물이다. 나에게 이곳은 세상의 소란이 닿지 않는 나만의 작은 우주이다.


뜰을 한 바퀴 돌아 마음의 예열을 마치면, 나는 소나무 아래 몸을 낮춘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밤새이끼를 덮고 있는 낙엽과 갈색 솔잎을 줍는 것이다. 뾰족한 솔잎이 이끼의 보드라운 살결을 찌르고 있으면, 마치 초록카펫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내듯 조심스레 하나하나 줍는다. 핀셋처럼 골라내는 마음의 잡초. 허리를 굽히고 시선을 낮춰야만 보이는 이 미시(微視)의 세계에서, 나의 번잡했던 자아는 비로소 작아지고 겸손해진다. 들뜨지 않게, 땅속 정착을 도우기 위해서 꼭꼭 밟는다.


이끼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를 뽑는 행위는 수행에 가깝다. 연약한 이끼가 다치지 않게 오직 이물질만을 골라내는 그 집중의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잡초 같은 생각들도 하나둘 뿌리째 뽑혀 나간다. 손끝에 전해지는 흙의 감촉과 풀뿌리의 저항을 느끼며, 나는 타인이 아닌 오직 나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마침내 피어나는 초록의 생기.

정리의 마지막은 '분무(噴霧)'다. 맑은 물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 이끼 위에 내려앉을 때, 갈색으로 잠들어 있던 이끼들은 일제히 깨어나 선명한 초록빛을 머금는다. 물방울을 튕겨내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이끼를 보며, 나 또한 세상의 시련을 거부하기보다 저렇게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이끼 동산을 가꾸는 일은 나에게 단순한 정원 손질이 아니다. 그것은 흐트러진 내 마음을 보듬고, 다시 정갈하게 일상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나만의 치유제'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표현하지 않을 뿐 누구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이끼를 들여다보며 사계절을 보낸다. 이끼동산은 나만의 힐링의 장소다.


뜰을 다 돌고 일어서는 나의 등 뒤로, 물기를 머금은 이끼 동산이 오늘따라 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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