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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4. 2024

기다림의 지혜

친구 관계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기다림'에 대한 것이다.



그런 때가 있다. (1) 생일에 친구에게 연락을 받지 못했을 때, (2) 내가 먼저 연락하지만 친구는 먼저 연락하지 않을 때 (3) 친구가 무슨 일이 있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사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을 때.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위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 또는 실망, 억울, 화가 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1) "나는 쟤 생일 때 선물도 해주고 편지도 썼는데, 쟤는 내 생일에 연락 한 번이 없네. 손절이다."


(2) "맨날 나만 만나자고 하고, 쟤는 단 한 번도 먼저 만나자고 안 하네. 날 싫어하나?"


(3) "누가 봐도 무슨 일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너무 싫다. 그럼 나도 이제 너한테 다 숨길 거야."



요즘 사람들 사고방식을 생각하면, 위의 예시처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그 관계는 진정으로 무너진다. 이럴 땐 우선 기다리고 봐야 한다. 당장 상대를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우선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편이다. 기다리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내 생일에 연락을 하지 않은 친구는 언젠가 그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나와 수동적으로 연락을 하던 친구도 나중에는 자신이 연락을 받기만 했고, 내가 서운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사정을 숨긴 친구는 시간이 흐르고 내적 여유가 생기면 그때가 되어서 나에게 사건의 전말을 토로해 줄 것이다. 시간은 상대를 움직이게 만든다.


위의 태도를 극단적인 낙관주의자의 태도로 의심할 수도 있다. 미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은 정작 단 한 번이라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상대를 기다려본 적이 있을까?



경험적으로 웬만하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줬다. 시간이 흘러도 나의 서운한 감정을 알아차려주지 못했다면, 그것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준 셈이다. 그땐 내가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이다. 시간이 나의 인간관계를 정리할 기준도 잡아주고 기회도 마련해 준 셈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래의 2가지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2가지 사실이 여러분들의 '기다림'을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



1. 상대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2. 상대가 인간관계에 있어 지혜로울 가능성은 낮다.



우리 친구들은 관계적인 요령이 서툴을 뿐이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생일 때 연락도 안 주고, 만나자는 말도 먼저 안 하고, 개인적인 사정을 감추는 게 아닐 것이다.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정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웬만하면 진짜로 알게 된다.



그리고 상대는 현자(賢者)가 아니다. 상대가 지혜롭고, 현명하고, 어질고, 총명한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당신이 서운해할 상황을 먼저 초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앞뒤 상황을 고려하고 지혜롭게 대처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쪽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감정적으로 많이 섬세할 가능성은 낮다는 말이다. 상대가 감정적으로 둔했을 수 있고, 나의 감정을 덜 헤아렸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배려와 존중을 못해줬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면서 나중의 상황을 기다리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출처: pinterest


사실 처음에 소개한 사례 3가지는 모두 경험담이다.



(1) 지난 나의 생일에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한 마디의 연락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는 것을. 그러니 기다렸다. 상대가 무슨 일이 있나 고민하지도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연락이 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줬다고 한다. 역시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2) 친한 친구가 있다. 근데 돌이켜보면 항상 나만 먼저 연락하고, 먼저 만나자고 했다. 나도 인간인지라 "쟤는 나한테 관심이 없나?" 라며 잠깐 서운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진한 관계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허황된 믿음이 아닐 것이라는 바람과 함께, 이번에도 기다렸다. 그래도 티를 조금은 냈다. 상대가 나의 감정을 빨리 알아차려주길 바라며 기다리면서 간접적으로 눈치를 줬다. 역시나 상대도 눈치를 챘는지, 먼저 연락해 주는 것을 의식해 줬다.



(3) 친한 친구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정을 숨기니, 말을 대충대충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대우를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당연히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다. 여유가 생기면 나한테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나는 천천히 기다린다.



만약 위의 모든 경우에서 내가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했다면 몇몇의 소중한 관계에 금이 갔을지 모른다. 기다리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속단하고 예단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대처다.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하나의 사실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은가. 상대가 나를 싫어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하나.



상대가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자. 상대가 내적 여유를 가질 때까지 기다려 주자. 멀리서 기다려 주자. 조용히 기다리자.



(2022.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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