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일기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여행 온 지 2주가 지났다. 지구 반대편을 넘어온 만큼 언어는 물론이고 자연, 건축물, 음식 등 많은 것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낯선 문화에 적응한 지 열흘쯤 되자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새로운 음식도 먹고, 장대한 광경도 구경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매력적인 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치고 외로워서 우울해졌다. 나는 분명히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사람인데 말이다.
유럽 여행 내내 충분히 쉬지 않고 바삐 돌아다니느라 지친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는 일찍 자고 늦잠도 부리며 일어났지만, 지친 마음은 변함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운가 싶어 사람이 많은 관광 명소와 번화가에 가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외로운 감정은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이게 무슨 경우일까. 심리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한국보다 비교적으로 흐린 날씨 때문일까? 여행하느라 운동을 못해서일까?
나는 외로운 감정을 잘 느끼지 않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잘 지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의 심정 변화가 낯설었다. 자기 분석이 이렇게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럴 땐 꼭 글로 써봐야 안다. 글로 써봐야 자기 객관화가 수월해진다.
내가 한국에서 외향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비슷한 언어, 비슷한 피부색, 비슷한 문화, 비슷한 성향의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외로운 감정이 해소되었던 것 같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 다른 문화,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함께 있어도 함께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어려웠다. 외국의 번화가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긴 하지만 그들이 '나와 연결된 내 사람들'이라고는 인지하기 어려웠고 '나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로 인지하게 되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했다.
외로운 감정 다음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유는 여행 다니느라 축구를 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규칙적인 운동은 몸소 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주고,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나는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축구나 풋살을 하며 유산소 운동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느라 축구를 하지 못했고, 노폐물이 쌓여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논리가 게다가 나는 매주 꾸준히 축구를 해왔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1주일에 한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플라시보 효과는 있다. 나는 1주일에 한 번은 호흡이 터질 정도로 뛰어야 몸이 가벼운 느낌을 받는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 몸이 지치기 마련이지만, 나는 운동을 안 하면 오히려 몸이 찌뿌둥하다. 주기적으로 몸을 풀어줘야 하는 타입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 외롭고 지친 감정을 어떡해야 할까? 방법은 쉽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외국인들로부터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해외 대학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 축구를 하면 된다. 혹은 한국에 빨리 돌아가서 친근한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고, 늘 하던 대로 축구를 자주 하면 된다. 하지만 비자도 없이 단기 여행 중인 나로서는 전자보다 후자의 방법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운동을 안 하니 뇌가 비효육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뇌 활동을 활발히 하기 위해 머릿속으로만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니 한결 낫다. 글쓰기로 나의 상황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여행을 즐기자.
나는 현재 이탈리아에 있고, 남은 여행은 에스프레소 바에서 글을 쓰며 즐길 생각이다. 지금까지 온종일 걸어 다니며 투어만 했다. 이 또한 여행 오기 전 주에 60시간 가까이 일을 한 나로서는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관성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글쓰기를 하지 않으니 뇌를 덜 쓰게 되어 멍청해지는 기분도 들어서 불쾌하기도 했다. 그래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을 포함해 앞으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다. 조금만 버티며 즐기고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2023. 01.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