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지능에 대해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나서 화가 나신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자동차 내부 본체를 쾅쾅 치고, 엑셀을 세게 밟는 걸로 거친 마음을 다스리셨다.
5년 이상 사용한 자동차의 에어컨이 고장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계는 언젠가 고장이 난다. 그런 자연스러운 경우에도 굳이 감정을 소모하며 인품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인간도 완벽하지 못하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가 만든 인공물이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나는 솔직히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좋게만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나는 상황은 불편한 상황이 맞다. 하지만 이렇게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분하고 짜증 낸다고 해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화를 낸다고 해서 고장 난 에어컨이 겁을 먹고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자동차의 에어컨이 고장 난 상황에서 계속 화를 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며, 불필요한 감정 낭비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경우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이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화를 내는 경우를 봤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도 정말 유능한 전문직이시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똑똑한 사람의 '감정 지능'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지능에는 일반 지능(IQ)과 감정 지능(EQ)이 있다. 지능에는 감정의 영역도 있다.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감정 지능이 낮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다행히 감정 지능은 경험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감정 지능이 잘 발달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잘 포착할 줄 안다. 그리고 그 감정을 투명하게 표현할 줄도 안다. 하지만 감정 지능이 낮은 사람은 이 과정에 대해 무지하다. 그래서 감정 지능을 높이려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의식적으로 포착하고 온전히 표현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포착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는가? 예를 들면 이렇다.
일을 하느라 며칠간 밤을 새우고 집에 돌아온 나를 상상해 보자. 집에 왔는데 배우자가 "오랜만에 왔는데 우리 외식하러 나가자!"라고 한다. 하지만 일에 지쳐 시체가 될 지경인 나는 "저게 무슨 소리야"라는 반응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 이때 나의 감정을 잘 포착해야 한다. ('당연히 짜증 나는 감정이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 보자.)
"내가 지금 저 말을 듣고 왜 기분이 나빴을까?" (인식)
그리고 포착해야 한다.
"이 감정은 뭘까? 되게 서운한 건데?"
"내가 왜 서운하지?"
"아, 내가 너무 고생하고 왔는데 배우자가 이걸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하구나." (포착)
이렇게 나의 감정을 포착한 후, 포착한 감정을 그대로(=투명히, 온전히) 표현해야 한다.
"외식하는 거? 너무 좋은데..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서운해."
"왜?"
"나 사실 며칠을 너무 고생했거든.. 그래서 그냥 집에서 쉬고 자고 싶었어."
"아 그래?"
"응. 우리 오늘은 집에서 먹자. 내가 사실 너무 피곤해. 근데 당신하고 밥을 먹는 건 좋아."
이렇게 감정을 잘 포착하고 인식하고 표현하는 사람을 보고 '감정 지능이 높다'라고 표현한다. 누군가는 이 과정이 쉬워 보여서 콧방귀를 뀌며 이 글을 읽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남성의 경우라면 이 예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진짜 마음은 서운한 마음인데, 그 서운한 솔직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괜한 짜증과 분노를 섞어서 다른 이유를 트집 잡아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치곤 한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 상태를 포착하고 느끼는 게 쉬워 보인다면 정말 오산이다. 이런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는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당신이라면 위의 상황 속에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실체를 진실되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위의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배우자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화가 난 진짜 이유를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이유를 근거로 대며 화를 낸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무의식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내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면 감정 지능의 영역에서 좋은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 초반부에 언급한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난 상황에도 높은 감정 지능 훈련을 적용시켜 보자.
"아, 내가 지금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포착). 더운 날이라 짜증 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짜증도 일시적일 필요가 있다. 에어컨이 고장 난 상황에서 짜증을 낸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흥분한 나의 모습을 보고 옆 사람이 불쾌할 수도 있다. 감정은 전이되는 거니까. 이 불쾌한 상황을 다른 부정적인 감정 섞지 않은 그저 '불쾌한 상황'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분해지자. 그리고 서비스 센터가 영업하는 날에 연락해 보자. 휴.. 창문이라도 여니까 좀 났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나오는 스타벅스나 가서 쉬어야겠다."
자신의 감정을 지혜롭게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안다면 상대의 감정도 잘 이해하고 잘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022. 10.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