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타박 Jun 16. 2024

누구나 겪는 감정적 슬럼프

감정 일기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 멘탈이 불안정하고 힘든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물으면 나는 여러 가지의 방법들을 알려주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만의' 노하우는 아니었다. 그저 본질만 이해하면 뻔한 말들이었다.  원래 정석같이 좋은 방법들은 뻔하다. 정석이니까 널리 알려졌고, 널리 알려져 뻔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나는 매번 그 말들을 해줬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니까. 나는 그들의 마음에 더 잘 와닿게, 더 진심으로 이야기를 전해 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 진심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알려준 방법들이 뻔한 인유는 두 가지다. 그것이 정석이기 때문이고, 어쩌면 내가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힘들어서' 남에게 의존하고 싶을 정도로 멘탈이 크게 흔들린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그저 혼자 해결했다. 며칠 생각하면 해결 가능한 고민들이었다. 심각하게 멘탈이 흔들린 적이 없어서 '나만의 노하우'랄 것도 없었다. 흔들리는 멘탈은 자연스럽게 겪을 고충이며 결국 지나가는 것들이라 단조롭게 생각하는 편이다.



설령 누군가 내가 판단하기에 가볍다 판단되는 고민을 가져와도 나는 켤고 무시하지 않아 왔다. 자의 사정이 있을 테고, 성격과 가치관, 환경이 다를 테니까. 그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했다. 그들이 힘들 때 나를 떠올리고 연락한 것도 신뢰의 의미니까. 그래서 조언해 줬다.



"물 많이 마시시고, 식사 잘 하고, 잠 잘 자고, 산책 즐겨하고, 스쿼트 하세요."



나는 원래 말이 많아서 더 구체적이었고, 논리적으로 원리를 설명해 줬다. 뻔한 말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되고 동기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했고, 보람을 느꼈다.



근데 요즘 들어 나에게도 버거운 고민들이 생기고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감사함과 보람과는 다른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전까지는 머리에서 맴돈 적 없던 낯선 생각들이었다.



"힘들 때 나를 찾아와 준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최대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 주며 함께 머리를 맞대어 줬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는 '내가' 힘들면, '내가' 깊은 고민이 생기면,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면, 그때가 되면 ‘나는’ 누구에게로 가야 하는가. 누구에게로 갈 수 있는가?"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태껏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 고집에 맞추어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에 따른 책임은 내가 지어야만이 마땅했다. 가장 친하고 관계가 깊은 친구들에게도 늘 강하고 약하지 않은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약한 모습은 자연스럽지 못할 셈이었다. 그렇다고 고민 상담을 해줬던 익명의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어설프다.



너무 강한 모습만을 보이려 애쓴 것의 부작용일까. 내가 정말로 약해졌을 때 가야 할 길을 쉽게 찾지 못했다.



과거에도 힘든 순간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 잘 생각하고, 혼자 잘 해결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난히 이런 생각("누구에게로 가야 하는가.")을 하는 이유가 뭘까. 내 멘탈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일까. 그래서 적적한 새벽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가. 날씨가 춥기까지 하다.



과학의 끝으로 가도, 철학의 끝으로 가도, 종교의 끝으로 가도, 세상사의 끝으로 가도 모든 것의 끝에는 인간의 의식이 있다. 모든 결과에 대한 원인은 '의식', 즉 나의 생각이다. 최근에 어떤 생각을 했길래 이런 생각("누구에게로 가야 하는가.")을 하게 된 걸까. 감정의 원인은 무조건적으로 생각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걱정을 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순간이다.



내가 바라보고 갔던 삶의 이정표가 덜 구체적이었다는 걸 깨닫고 길을 잃을까 걱정했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 차이에 실망했다.

이루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좌절했다.

생각이 많으면서도 너무 생각 없이 살아서 자책했다.



삶의 지표가 추상적이라면 더 전략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들면 된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 차이가 크면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며 차근차근 이루어나가면 된다.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지면 내가 가진 많은 시간들(어리니까)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를 상상하면 된다. 생각 없이 살았으면 더 생각하고 살면 된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걸 모조리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이면 내가 아니라 공자도 부정적인 아우라에 휩쓸렸을 것 같다.



부정은 부정을 끌어당기고, 긍정은 긍정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게 말이야 쉽지, 참 어려운 일이다. 여태까지는 쉬웠는데 요즘은 왜 이리 어려울까. 일을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성취감이 없어서 도파민*이 부족한가? 스쿼트를 안 해서 근육이 줄어 남성호르몬*이 내려가 삶의 열정이 떨어지는 건가? 사람을 잘 안 만나서 옥시토신*이 결여돼 덜 행복해진 걸까? 자극적인 숏츠 콘텐츠를 많이 봐서 도파민에 중독*된 걸까? 여러 이유를 의심했다. 어쩌면 다 해당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성취감을 느끼면 도파민이라는 행복호르몬이 분비된다.


*남성호르몬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은 열정이다. 근육이 많을수록 남성호르몬이 많이 생긴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몸 전체 근육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다.


*사람이 사람들과 가까이 관계할 때 옥시토신이라는 행복호르몬이 분비된다.


*노력을 하고 보상을 얻으면 도파민이라는 행복호르몬이 분비된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쉬운 노력(손가락 까딱)으로 보상(인스타, 유튜브 속의 자극적인 콘텐츠)을 너무 쉽게 얻어서 도파민에 중독되어 올바르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의심한 것들 중 합리적인 의심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씩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다.



1. 부족해진 성취감을 다시 채우기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성취감을 채우는 기초 단계로 찬물샤워가 있는데, 난 따뜻한 물 샤워는 포기 못하게땅.)


2. 남성호르몬을 높이려고 헬스장을 등록했다. 실천율을 높이기 위해 집 앞 도보 2분 거리의 헬스장에 등록했다.


3. 실제로 사람을 만나니까 피폐해진 내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1번이 사람과 많은 교류를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4. 하루에 숏폼(릴스, 숏츠)을 접하는 빈도를 많이 줄이려 한다. 성적인 콘텐츠나 성관계도 긴 텀을 두고.



위의 사고 과정을 정리하면 '내 상태를 의심' → '객관화' → '반성' → '실천'의 이상적인 순서다. 좋은 이성적인 사고로 문제를 단번에 빠르게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은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3주가 지난 시점이다. 그만큼 단번에 해결하지 못하고 오래 쥐고 있던 문제다. 그 과정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빨리 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 맹하게 있기도 했고, 현타를 느끼며 극심하게 차분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도 없는 자연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오죽했으면 짧은 머리를 극심하게 싫어하는 내가 미용실에 가서 머리 정말 많이 자르고 왔다. 3~4개월 동안은 사람 안 볼 생각으로 미용실에 갔다. 나를 어릴 때부터 봐 온 친구들이라면 알겠지만, 난 항상 머리가 길었다 (장발은 아니지만). 바람 때문에 예쁘게 세팅된 머리가 흐트러지는 게 싫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 여행 가길 싫어할 정도로 스타일에 민감했다.



사진
(민망해서 최근에 삭제함)



내 기준에서 이 정도면 정말 많은 걸 포기한 거다. 공군 민혁이보다 머리가 짧다. 해군 종민이보다 머리가 짧다. 사진을 올리는 것 자체도 많은 걸 포기한 거다.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안 한 생얼 올린 거면 말 다 한 거다. 이참에 입대나 해버릴까 싶었다 ㅋㅋ. 내가 열광하는 축구를 할 땐 미치게 편하긴 하더라. 이 편함에 익숙해져서 다시 머리 기르고 나서 축구를 편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머리를 자 게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 2주 차 초반쯤 됐을 때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거의 마무리해 가는 3주 차 마지막이다. 뒤늦게 깨달았다. 잃어버린 멘탈은 다시 찾을 수 있어도, 잘려버린 내 머리카락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감정적 힘듦을 겪고 이제 다시 좋아지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이유들 중 하나는 '내 부정적인 기운이 상대방에게 전이될까 봐'다. 말로 하는 게 아닌, 글을 써서 이야기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면 글에 담긴 내 감정 상태가 전이될 수 있으니까 부정적인 분위기로만은 작성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섬세한 배려가 숨어 있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다. 돌이켜보면 극복하는 시기도 분명히 공존했다. 힘든 순간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결국 극복해내는 미래의 순간을 기대하며, 오늘을 착실히 살아가자.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2023. 11. 09)

작가의 이전글 우주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사람 생명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