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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진위가 중요할까 믿음이 중요할까

by 호수

행복은 정의될 수 없다는 나의 철학에 반해 성경에서 추론할 수 있는 행복의 정의란, 죄가 있기 전의 인간의 모습이다.



성경의 첫 번째 내용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차례대로(빛, 궁창, 식물, 광명체, 짐승, 사람) 지으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사람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죄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보기 좋으셨던 모습, 즉 죄로 인해 왜곡되기 전의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는 보기 좋은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서 맡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수단으로 변하는 것,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완성됨) 세상의 조각들을 경험하며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인생.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것이다.




성경의 말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너무 잘 짜인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구조가 탄탄한 이야기에 정신이 쏠리다 보면 어느새 성경이 가진 논리의 흠을 지나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전 게시물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말을 추앙한다. 그냥 무식하게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강하게 추앙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들에게 느껴지는 에너지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공통으로 기독교인들을 향해 의심하는 구석이 존재한다. 그들이 믿는 것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부분이다. 나 또한 성경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과 함께 절레여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살펴봤을 때, 내가 집중해서 관찰해야 할 건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의 진위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그 힘은 믿음의 힘이다. 성경의 이야기가 얼마큼 논리적이고 얼마큼 붕 뜬 이야기인지는 나도 판단하기 어렵다. 죽을 때까지도 판단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이해되는 하나는 예수의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힘이다. 나는 그 힘에 놀랐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성경의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도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어쩌면 꼭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성경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성경을 강하게 부정해서 그 사람이 얻는 게 무엇인가? 성경을 부정해도 새롭게 알게 되는 진리는 없다. 진리일 수도 있는 걸 거부했을 뿐, 몰랐던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옹호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 중 도대체 누가 더 좋은 기운을 받고 있는가? 기독교인이다.



누가 더 힘찬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볼 수 있는가? 기독교 교리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떠나서 말이야.



성경이 아니더라도, 만약 진리와 배반되는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 사실이 중요한가 믿음이 중요한가. 사실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주는가, 믿음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주는가. 바로 그걸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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