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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고 중요한 것

글쓰기, 사랑

by 호수


차분하게 마음을 읊조리는 게 왜 이리 편안한지 몰라.



나에게 글쓰기란 생각을 옮기는 행위다. 그런데 오늘따라 ‘글쓰기란 마음을 읊조리는 행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할지에 따라 그날의 목적지가 정해진다.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는 집 앞의 어둡고 작은 카페에, 사진을 보정하고 영상을 편집할 때는 크고 넓은 프렌차이즈 카페에 간다. 요즘 들어 사진과 영상 작업이 늘어나 프렌차이즈 카페에 자주 갔다. 오늘이 되어서야 몇 주 만에 집 앞의 작은 카페에 다시 찾아왔다. 오랜만에 방문해도 사장님의 미소는 한결같다. 나의 최애 곡을 아시는 사장님은 음악으로 환영이라도 해주듯 한두 곡 이내에 내 최애 곡을 틀어주신다. 내가 왔을 때 이 곡이 나온 적이 종종 있었지만 우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겠지. 사장님의 그토록 섬세한 센스가 항상 나를 반겨주었던 것.



이곳에서는 항상 글을 쓴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나누어주는 종이 설문지에 연필로 글을, 두 번째로는 블로그에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마음이 뭉친다. 싱숭생숭했던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한 데 꽉 정리되어 뭉치는 기분. 그 기분에 글쓰기를 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하다. 어쩌면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행위가 어쩜 이리 확고할까?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행위(소위 좋아하는 일)가 없어 고민인 사람들을 볼 때면 상대를 향한 약간의 동정과 함께 하염없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는 축구와 글쓰기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한 치의 고민 없이 '사랑한다'고 답할 수 있다. 그것들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고 위로해 주는데.


카페에서 나눠주는 질문지


글쓰기가 마음을 읊조리는 것이었다면, 내게 독서는 '뇌가 쫄깃해지는 것'이다. 대체로 인문 철학 도서를 읽는 나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답을 탐구해야 하는 이 분야의 독서가 나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결코 단편적인 수준의 사색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깊고 고차원적인 사색을 필요로 하는 주제들. 그것들이 내 뇌를 주무른다.



최근에 한 사람에게 <데미안>을 추천해 줬다. 그이가 실제로 데미안을 거의 완독하고 감상문까지 작성했다. 그 글을 읽고 데미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한 내용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답장을 보냈다. 데미안을 읽은 지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한 내용을 상기하려 노력하느라 뇌가 쫄깃해지는 기분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곤 짜릿했다. 이 기분이 바로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



다 좋아하고 싶고, 다 사랑하고 싶다. 비록 지금은 행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지만 언젠가 지혜를 얻고 삶의 본질이 마음에 와닿는 순간이 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려 하겠지. 그제야 비로소 예수가 말한'사랑'을 알게 되겠지.


Cheer up!


사랑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생각보다 방대하다. 성경만 봐도 그 의미는 단순한 애착 감정을 초월해 희생과 섬김, 인내와 결단을 포함한다. 아직 성경에서 의미하는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단순한 이성 혹은 가족 간에 발생하는 단편적인 감정뿐만은 아니라는 건 이해된다. 살다 보면 사랑의 힘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특히나 여성에게 잘 드러나는 아동을 향한 아우라. 그 아우라는.. 심히 강하다.



단순한 일처리도 못해서 답답했던 4-50대 여성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단순 업무도 처리하지 못해 나에게 도움을 구하는지.. 그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첫인상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써 일을 못하는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 나는 그분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다. 속으로 그를 싫어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 또한 내가 그녀를 먼저 사랑해 주지 못한 경우다. 그녀는 자신이 난감해 한 행정 업무를 뒤로하고 곧장 자신의 메인 업무인 아이들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분명 나에게 우문을 건넬 때 지은 멋쩍은 미소가, 아이들을 향할 때는 어찌 저리 강한 아우라를 풍기는가? 단 한 치의 주름도 변치 않은 같은 미소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미소가 부처의 미소와 겹쳐 보인다.



그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 그녀는 사랑의 힘으로 그들을 제어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사랑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아이들의 어리석음을 사랑하고 있다. 그녀의 강함 앞에서 낯짝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런 나의 어리석음은 누가 사랑해 주어야 하는가. 반성하고 참회하리.



사랑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본능이다. 결코 흉내 낼 수 없고, '척'할 수도 없다. 솔직한 본능에서 출발하는 힘이며, 그 힘은 강하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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