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주토피아를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유치해 보였다. 우리가 놓인 사회는 각박한데 그런 순진무구한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는 게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해야 할 것도 많고 이뤄내야 할 것도 많은데 저런 애니메이션이 그리 좋을까 싶더라.
그녀의 주토피아에 대한 애정이 생각보다 크게 거슬렸다. 어쩌면 화가 날 정도로 거슬렸다. 날카로워진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곧장 자문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가?". 평범하지 않은 감정이 요동칠 때는 그 이면에 내가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감정은 늘 단순한 이유 하나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은 감정의 배후에는 방어기제나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를 강하게 거부할수록, 사실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건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나는 오래전부터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순수한 눈'을 갈망해 왔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눈과 닮아 있었다.
순수한 눈이란 인간이 살아가며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사회적 편견과 색안경을 벗은 상태를 말한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를 해탈의 경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마치 어린 아기의 관점처럼 나만의 해석이 개입되지 않고, 밝은 것은 밝게 보고 어두운 것은 어둡게 볼 줄 아는 그런 투명한 관점을 가진 상태다. 내가 그러한 상태를 갈망하는 이유는 세상을 더 온전하게 감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리사욕과 이해관계가 뒤엉킨 사회 속에서 그런 눈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의 순수한 눈을 보았다.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마주할 때, 사람은 결핍을 느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녀를 향해 느꼈던 불편함의 밑바닥에는 그녀의 순수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내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재밌는 걸 재밌게 느끼지 못하는 불투명한 관점을 가진 내가, 그녀의 투명한 시선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주토피아는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