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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an 20. 2023

그만두려던 신규 공무원을 붙잡아준 말 한 마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지음(知音)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소리를 알아준다'라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시절, 백아라는 거문고 명인과 그의 친구 종자기의 일화에서 유래된 이 표현은 지기지우(知己之友), 백아절현(伯牙絶絃) 등의 표현과 같은 뜻으로, 주로 '나의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정말 가까운 친구' 혹은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등의 의미로 일상에서 사용된다.


 어떤 조직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공직 사회에서도 역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의 존재는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 처음 동사무소에 발령났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무원이 첫 직장이었던 나는 아무래도 발령 초기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 서투름은 주로 업무 처리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졌는데, 특히 내가 속한 팀의 팀장과 그 동사무소의 수장인 동장과의 관계가 특히 그러했다.


 발령 초부터 이어진 몇 차례의 기싸움으로 인해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내가 업무적으로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팀을 이뤄 나를 공격하기 일쑤였는데, 나는 같은 실수를 해도 더 크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은 업무 처리 시에도 절대 실수하지 않으려 언제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사무실에서의 내 얼굴이 점차 흙빛으로 바뀌어가던 무렵, 평소 마주칠 일이 거의 없던 옆 팀의 팀장님이 어느날 침울해하고 있던 내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씨 ××동 살지? 나 오늘 ○○씨네 근처 갈 일 있는데 괜찮으면 퇴근길에 나 좀 태워줄 수 있어?"


 별다른 일이 없었던 나는 그 팀장님과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그 팀장님은 중간중간 차가 막힐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물어봤다. 여자친구는 있는지, 전공은 무얼 했는지, 공무원 시험 준비는 언제부터 했는지 등등.


 그러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그 팀장님은 대뜸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씨, 그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지? 근데 신경쓰지 마. 그 사람들 이상한 거 남들도 다 알아. 말을 안하는 것뿐이지. 그 사람들 상대할수록 ○○씨만 손해보는 거야. 그냥 무시해. 절대 이기려고 하지마."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당연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사실 직장이라는 곳에서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암묵적인 룰 속에서 철저하게 '화기애애함''연기'하고 있는 와중에,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굉장한 약점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우리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 사무실에서 별다른 말씀도 없으시던 분이 대뜸 잘 알지도 못하는 타 팀의 신규 직원에게,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조언을 해주듯, 가식 하나 없는 진심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사무실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 팀장님과 함께 동사무소 뒷마당에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직장에 대한 고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생각들까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팀장님이 계셨었기에, 적어도 내가 첫 발령지인 동사무소에서 만큼은 의원면직 하지 않고 힘든 신규 시절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팀장, 동장과 무려 1년 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일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비록 미친듯이 까이고, 혼나고, 좌절하고, 고통받던 시기였긴 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내 삶에 첫 '지음(知音)'이었던 그 팀장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2018년도의 동사무소 생활이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그렇게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음(知音)과 같은 존재가 있는 것이, 많은 월급, 편한 업무, 가까운 출퇴근 거리보다도 우리가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100%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직장 내에 함께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여러분의 직장생활은 이미 충분히 성공적인 것이 아닐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라디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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